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다세대주택 지하 101호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30대 독신여성 부동산 컨설턴트 김모(35)씨는 카드빚에 쪼들린 진모(32·특수절도 5범)씨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평소 카드빚에 몰렸던 진씨는 지난달 중순 택시를 타고 퇴근하던 김씨를 미행, 김씨가 혼자 산다는 것과 창문쪽으로 침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약 1주일 후인 지난달 23일 오후 6시께 빨간 목장갑과 드라이버를 준비한 진씨는 방범창을 뜯고, 침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현금과 귀금속 등 쓸 만한 물건이 없자 방안에서 3시간 30분을 쪼그리고 앉아 김씨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진씨는 9시30분께 귀가하던 김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린 뒤 전깃줄로 두 손목을 묶고 지갑 속의 10만원권 수표 2장과 신용카드 6매를 빼앗았다. 진씨는 또 김씨와 번갈아 샤워까지 하면서 성폭행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김씨를 위협,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진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김씨의 목을 졸라 실신시켰다. 그러나 김씨가 목숨을 잃자 진씨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수건을 얼굴 위에 덮고, 쓰레기봉투를 머리에 씌운 뒤 테이프로 밀봉했다. 진씨는 방안 곳곳을 1시간 동안 치우는 등 현장을 깨끗이 정돈하고나서 문 밖에서 문을 잠갔고, 사용한 범행도구는 전부 인근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건 발생이 열흘여 지난 4일 김씨의 시신을 발견한 경찰은 질식사가 사인이라는 것 외에는 결정적인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장롱과 출입문의 장갑흔적, 현관 바닥에 있던 260㎜짜리 운동화 발자국이 유일한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었기 때문. 자칫 영구미제로 묻힐 뻔했던 사건은 진씨의 엉뚱한 사후 행적으로 인해 쉽게 풀렸다. 범행 직후 진씨는 숙소인 고시원으로 돌아와 하루 이틀 동안 TV를 통해 사건이 보도되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보도가 되지 않은 것에 안심한 진씨는 완전범죄가 성공한 것으로 착각, 김씨의 카드로 현금 500만원을 인출했으며, 김씨 집에서 훔친 휴대폰으로 자동응답서비스(ARS)를 이용,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특히 수표 2장을 사용하면서 진씨가 실명으로 배서를 한 것은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경찰이 김씨의 직장동료로부터 사고 직전 저녁 회식 자리에서 수표 2장을 김씨에게 건넨 사실을 확인, 수표행적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진씨의 엉뚱한 행동만 아니었다면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경찰은 15일 진씨에 대해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