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4시10분께(현지 시각) 시작된 미 북동부와 중서부, 캐나다 지역의 대규모 정전 사태는 발생 3분 만에 21개 지역 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키며 주요 도시를 일시적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도시 기능 마비
전력 공급이 일시에 중단되면서 뉴욕에서부터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캐나다의 오타와 토론토에 이르는 수십개의 도시는 통신망이 두절되고 철도 지하철 항공기 등 수송 기능이 마비되는 등 큰 혼란에 빠졌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고층빌딩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거리를 메웠고, 각 사무실과 호텔 등에서는 엘리베이터 속에 갇힌 이용객들이 구조를 호소하기도 했다.
퇴근길 시민들은 신호 등마저 고장 난 도로를 걸으며 교통편을 찾았으나 전철과 교외 통근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자 난감해 했다. 휴대전화가 통화량 폭주로 불통되면서 각 공중전화 부스에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려는 시민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맨해튼과 브루클린, 뉴저지주 등을 잇는 주요 다리에도 걸어서 귀가하는 인파와 차량들이 뒤엉켜 9·11직후 맨해튼 탈출 행렬을 떠올리게 했다. 한 시민은 "테러 없는 9·11이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전 후 인터넷을 통해 'W32/블래스터' 웜 바이러스 전파나 해킹에 의한 사고설이 퍼지고 있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뉴욕 타임스는 "뉴욕 시민들은 지하철에서, 길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온통 갇힌 신세가 됐다"며 "그들은 분노, 체념, 유머 속에 전기가 없는 순간을 견뎠다"고 밝혔다. 이날 큰 사고는 없었으나 자정 무렵 로 맨해튼과 브루클린 지역에서 몇 건의 약탈과 병 투척 등이 있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캐나다 오타와에서는 심각한 약탈 행위가 한동안 계속됐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연방 및 주 정부 대응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정전 직후 "이 사태가 테러로 인한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며 시민들의 불안을 진정하는 데 안간힘을 쏟았다.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를 방문 중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정전사태가 테러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사고원인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주와 뉴저지주는 비상사태를 선포, 주 방위군과 경찰을 주요 지역에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며 뉴욕시도 요소요소에 경찰관들을 배치, 질서유지에 총력을 쏟았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마감 후 정전 사태가 발생,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각 금융기관들도 비상 발전기 등을 가동해 큰 서비스 장애는 생기지 않았다. 각 언론들은 의회의 여름 휴회가 끝나면 이번 사태가 정치쟁점으로 부각할 것으로 전망했다.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에너지 장관을 역임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CNN 인터뷰에서 "미국은 초강대국이지만 전력망은 제3세계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복구 상황
15일 아침 북미전력공급위원회는 "밤 사이 정전된 설비의 3분의 1 정도가 복구됐다"고 말했다. 정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날 미국의 뉴욕 증시는 정상적으로 개장됐으며 주가에 뚜렷한 등락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뉴욕 지하철도 14일 밤 9시30분부터 부분 운행이 재개됐으며, 한동안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거나 지연됐던 뉴욕의 존 F 케네디와 라과디아 공항 등 주요 공항도 15일 정상 운항할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뉴욕시는 15일 오전 5시 현재 맨해튼 남부 등 일부 지역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으나 다른 지역의 경우 아침까지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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