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면 책을 만드는 내 직업이 부담스러워지곤 한다. 대부분의 책은 읽으려고 사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편집이나 장정은 물론 책을 쓰거나 만든 이의 기획의도와 상품성까지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다가 순수하게 글을 읽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사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대충 훑어보기만 할 것임을 알면서도 몇 권씩 책을 사들고 들어오면서 내가 혹시 텍스트의 힘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러나 놀라운 책, 영감이 넘치는 글을 읽게 되면 역시 좋은 책은 근본적으로 좋은 글 없이는 결코 성립할 수 없다는,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놀라곤 한다.마샬 맥루한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대단히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지적인 모험이다. 따라서 모든 모험이 그렇듯 흥미롭지만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오독은 거의 필연적이다. 맥루한이 이룩한 가장 인상 깊은 업적은 '명성'이라는 냉소적인 표현은 사실 그에 대한 적절한 평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확립시킨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그에 대한 평가가 왜 그렇게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가를 분명하게 확인시킨다.
오늘날 우리는 체계적 혹은 논리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흡수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감성의 영역인 예술조차 설명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여 이해하려고 한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우리의 이런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한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은 일단 형식적 의미 이상의 친절한 차례가 없다.
맥루한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그에게는 전략적이고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10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른바 '모자이크식' 글쓰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책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한 구절에서 시작해 중세와 근대, 현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윌리엄 블레이크와 제임스 조이스 등의 현란한 인용으로 독자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우리가 헐떡거리는 이유가 바로 체계적 사고가 근거하고 있는 활자문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자책 또는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된 흉흉한 소문이 출판가에서도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적어도 겉으로는 종이책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로서 책의 운명 또는 텍스트의 변화나 생성은 이제 겨우 초보적인 수준의 시험을 거쳤을 뿐이다. 맥루한을 오독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우리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문화의 토대인 활자문화나 책이 그리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튼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도 나는 책을 만들고 있는 것을.
/김광식·책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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