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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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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사진 4

입력
200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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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앞에는 성산시영아파트가 있다. 월드컵 공원이 그냥 '난지도'였던 시절부터 있던 아파트인데 요즘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경험하고 있다. 근처에 멋진 경기장과 아름다운 공원이 들어섰기 때문이다.어디에나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월드컵경기장 공사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 자기 집 베란다에 삼발이를 놓고 그 위에 카메라를 고정해 놓았다. 그는 공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매일 일정한 시간에 베란다로 가 셔터를 눌렀다. 그는 그 일을 월드컵 경기장이 완공될 때까지 계속했다. 물경 천 장이 넘는 그 사진을 빨리 넘기면, 마치 꽃이 피는 모습을 장기 촬영한 동영상처럼, 대형 경기장 하나가 황무지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그가 찍은 그 사진들은 영국 BBC에 거액에 팔렸다고 한다. 이토록 중요한 건축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찍어놓은 사진은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배가 아팠다. 경기장은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아주 잘 보인다. 집에는 삼발이와 카메라도 있다. 나 같은 주민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로또만이 기회는 아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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