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빈소에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조문 올 것인가 여부에 세인의 관심이 쏠렸었다. 한때 정회장의 충직한 가신(家臣)이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등을 돌리게 된 이들은 끝내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문할 수 없는 속사정은 제쳐 두고 세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 같다. 반면 전형적인 가신의 모습을 보여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겐 칭송(?)이 자자했다. 이 모두가 매우 한국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재벌의 오너 주위에는 가신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유독 현대그룹에서는 가신들의 영향력이 컸었다. 정주영이라는 거목을 떠받쳐 온 이들은 주군을 섬기는 일 외에 2세들의 싸움을 촉발시키거나 대신했고 패를 갈라 반목하기도 했다. 오너들이 주위에 가신을 두는 것도 다분히 한국적이다. 오너들은 워낙 외부로부터의 예기치 않은 위험이 많아 이를 차단해 줄 방패막이를 필요로 했다. 충성스런 가신은 훌륭하게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유사시에는 주군 대신 희생하면서까지 주군을 보호해 주었다.
■ 가신이란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대부(大夫)들이 거느리고 있던 신하들로, 제후가 내린 넓은 봉토를 다스리는 데 참모역할을 했다. 가신의 속성은 자기 희생과 주군에 대한 충성이다. 자신에게 없는 권력과 금력의 힘을 빌려 자신의 뜻과 이상을 펴기 위해 가신을 자청하기도 한다. 가신의 생활은 주군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겐 장세동이란 충직한 가신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겐 홍인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권노갑·박지원이 있었다. 모두 주군을 위해 옥고를 치르며 자기희생을 감내했다.
■ 지금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도 어떻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가신인 셈이다. 가신이 주군도 모르게 청와대를 빠져나와 질펀한 향응을 받고 선물까지 챙겨 돌아온다면 주군이 불행하다.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자꾸 덮으려고만 하는 가신 또한 주군을 불행으로 이끌 뿐이다. 진정한 가신이라면 목숨과 자리를 내놓고 주군을 위해 바른 진언을 해야 마땅한데 지금 청와대에 그런 가신이 있는지, 혹시 주군이 코드 맞는 가신만 총애한 나머지 진짜 가신을 내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가신들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는 것을 보며 우리 대통령이나 재벌 오너들이 가신을 내칠 때는 언제일까 꿈꾼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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