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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메이커]31살 젊은 "맞춤 작곡가" 박근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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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메이커]31살 젊은 "맞춤 작곡가" 박근태 씨

입력
200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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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곡을 만드는 데 전념하려고요.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작곡가 생활을 시작한 지 12년이 됐으나 이제 겨우 31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91년, 가는 기획사마다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자신이 만든 곡을 한번만 들어 달라고 사정하고 다니던 19세의 애송이가 이제는 거꾸로 기획자들이 돈가방 들고 찾아와 곡 하나 써달라고 매달리는 인기 작곡가로 성장했다.

박근태(31). 90년대 이후 한국 가요계를 이끌고 있는 김창환 김형석 최준영 등과 어깨를 겨루며 약 200곡을 만들고 30여곡을 히트시킨 다크호스다.

94년 룰라가 부른 '백일째 만남'이 명성과 함께 작곡에만 힘쓸 수 있도록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 출세작이고, 솔로로 데뷔한 핑클 출신 옥주현의 '난(亂)'과 2003년 최고 인기그룹으로 부상한 쥬얼리의 '난 니가 참 좋아'가 최근 히트곡이다.

요즘 잘 나가는 작곡가들이 모두 음반제작사를 만들고 가수 매니지먼트 사업을 겸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아직은 딴 곳에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없어 프리랜서로서 곡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겸손을 보인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때 기타를 배워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고교생들과 그룹을 만들 정도로 음악에 조숙했다. 고교에 올라가며 사회인들 틈에 끼어 본격적인 록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2학년때는 작곡에 필요한 최소의 컴퓨터 장비를 장만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컴퓨터 음악은 메마르다'고 기성 작곡가들이 외면할 때 어른들 보다 먼저 정교하고 다양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컴퓨터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앞서 나간 것이다.

대학은 제어계측과에 입학했으나 1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와 본격적으로 작곡의 길로 들어섰다. 우선 학생 때 습작했던 곡들을 다듬어 유명 기획사를 모두 찾아 다녔다.

"xxx씨가 부르면 분명히 히트할 겁니다." "xxx씨에게 꼭 맞는 곡입니다."

나름대로 인기 가수의 목소리와 창법, 분위기를 분석하며 딱 맞는 음악이라고 만들었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당시에 만든 곡들을 다시 꺼내 보면 치기가 많이 느껴져요. 혼자 얼굴이 후끈해 지기도 하지만 그 때의 섭섭함 때문에 더 열심히 음악에 몰입하고 꼭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드디어 92년 공연세션을 하던 중 박준하의 매니저를 알게 돼 첫 곡을 주고, 곧 신인 김정민의 1집 제작에 참여해 앨범의 절반을 작곡하고 타 작곡가들의 곡을 편곡까지 했다. 그리고 94년 룰라의 1집에 담은 '백일째 만남'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기획사들이 하나 둘 달려들며 DJ DOC 소찬휘 젝스키스 쿨 김현정 신승훈 샵 에코 쥬얼리 t 성시경 장나라 등 수많은 가수들과의 인연이 만들어졌다.

그는 지금도 신인이나 중고신인을 선호한다. 이미 색깔이 정해진 기성가수 보다는 완성되지 않은 신인에게서 숨은 재능을 찾아 키워주는 게 성취감이 크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제작사 소속이 아니니 신인 오디션은 하지 않고 기획사나 가수의 의뢰를 받아 곡을 만든다. 그러나 그의 곡을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제일 먼저 목소리를 본다. 아무리 유명 가수라 해도 목소리에 자신이 빠져들 만한 매력이 없으면 거절한다. 일단 매력포인트를 찾아내면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가수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곡을 쓰는 데 힘쓴다. 가수가 잘 소화시켜 성공할 수 있는 곡을 만들어 주는 '맞춤 작곡자'인 셈이다. 대신 곡을 받으면 가수는 녹음을 마칠 때까지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족할 수준이 안 되면 한 소절을 백번 이상도 반복한다. 어느 가수는 녹음을 완료하고 컴퓨터의 기록을 확인해보니 1,800번을 고쳐 불렀다.

드라마와 CF때문에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던 장나라, 매일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는 옥주현으로서는 때로 박근태라는 '독종'을 만난 게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가수가 결정되면 그 가수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대화를 하며, 일단 컴퓨터 앞에 앉으면 순식간에 노래를 만들어낸다.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는 단 10분 만에 만들었고 샵의 '스위티', 김현정의 '단칼'은 5분밖에 안 걸렸다. 히트한 곡일수록 단시간에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곡을 쓸 때는 그 가수가 과거에 부른 노래들을 전혀 참고하지 않는다. 전작을 들으면 오히려 상상력에 제약이 생기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패턴의 멜로디를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노래만 듣고서는 박근태의 곡이라는 것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박근태 풍' 이라 부를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같은 가수에게도 매번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다양성과 변화가 가수의 수명과 직결되고 팬들에 대한 서비스라는 생각때문이다.

이번 옥주현의 솔로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는 모험에 가까운 변신을 시도했다.

옥주현은 그동안 핑클의 리드보컬로 고음파트를 담당하며 항상 톤이 같았다. 가창력이 뛰어나지만 소녀적인 댄스풍 노래 일색이었다. 그러나 타이틀곡 '난'은 완전 새로운 분위기. 옥주현이 '팝페라'라고 할 정도로 팝에 클래식의 요소를 가미한 이 곡은 옥주현이 가진 중저음의 매력과 가창력을 강조하면서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벗겨냈다. 앨범판매도 중요하지만 프로듀서로서 미래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의도였다.

성시경 2집에 들어간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의 경우 청량감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성시경은 음폭이 넓지 않아 도입부에서 목소리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고, 음을 올리지 않은 채 감미로움을 더하도록 했다.

룰라 소찬휘 쥬얼리 샵 에코 t는 박근태가 이름을 세상에 나게 한 신인이다.

1집이 성공하지 못했던 쥬얼리는 지난해 2집을 맡아 프로듀싱하며 타이틀 곡 '어게인'을 히트시켰다. 1집은 타깃이 불분명하고 보컬에 특색이 없어 보였다. 그는 멤버의 포지셔닝을 새로 하고 멤버 4명이 가진 목소리의 매력을 살리면서 '음악적 댄스곡'을 시도했다. 2집 성공의 여세를 몰아 최근 발표한 3집에서는 박근태의 '난 니가 참 좋아'가 대히트하며 쥬얼리는 인기정상의 그룹으로 올라섰다.

재미동포 t는 업타운 멤버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매혹적 목소리의 보유자. 타샤니에서 활동할 때 '경고'란 곡을 주고, 솔로 데뷔곡으로 '시간이 흐른 뒤'를 만들어 대히트를 시켰다. 힙합앨범에 타이틀 곡으로 선물한 '메모리즈'도 역시 히트.

박근태는 요즘 광고음악과 영화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광고에서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CF에서는 기존 곡이 들어가 여백을 메워주는 정도였는데 그는 지난해 라네즈 화장품으로부터 광고에 넣을 성시경의 노래를 의뢰받은 것. 이때 만든 것이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였고 이 곡은 음반이 나오기 전부터 화장품 광고에 함께 나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봄 방영된 코카콜라 CF에서도 아직 음반이 나오지 않은 록그룹 체리필터 보컬 조유진의 '느껴봐'를 먼저 넣어 공개하고 광고속에 가수와 작곡자의 이름을 표기하는 이색적인 홍보로 눈길을 끌었다.

박근태는 지상파에서 15초 밖에 방영되지 않은 이 곡이 좋은 반응을 얻음에 따라 "아직까지 국내에 록시장이 좁아 기피했었는데 이제는 언더에서 활동중인 록밴드들과 작업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지금은 10월초 방영될 SBS의 복싱 드라마 '때려'의 주제곡과 장진 감독이 준비중인 멜로영화의 음악을 맡아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수상경력

2002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듀서상'

2002 SBS 가요대전 '올해의 작곡가상'

● 작곡 및 프로듀싱 앨범

'백일째 만남' '무빙'(룰라) '나의 성공담'(DJ DOC) '헤어지는 기회' '약속된 후회'(소찬휘) '행복한 나를'(에코) '폼생폼사'(젝스키스) '송인'(쿨) '경고'(타샤니) '텔미 텔미'(샵) '시간이 흐른 뒤' '메모리즈'(t) '어게인' '난 니가 참 좋아'(쥬얼리)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성시경) '단칼'(김현정) '혼자서도 잘해요'(장나라) '그대여서 고마워요'(신승훈) '난'(옥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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