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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중국서 "건축大師" 호칭 상암경기장 설계자 류춘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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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중국서 "건축大師" 호칭 상암경기장 설계자 류춘수씨

입력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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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설계자인 건축가 류춘수(57·이공건축 대표)씨가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 스포츠센터와 대규모 스포츠단지를 설계한다. 샤먼시 중심가에 짓고 있는 스포츠센터는 이미 설계가 끝나 다음달에 첫 삽을 뜨며 바닷가 4만평의 대지에 들어설 스포츠단지는 금년말까지 설계를 마치고 내년에 착공하게 된다.우리나라에서 고택(古宅)과 정자가 가장 많다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수세식 화장실을 본 적이 없다는 '촌'사람인 그는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된 건축물로 새로운 공간(異空)을 창조하고 있다. 88올림픽 체조경기장 설계로 1990년 시드니 쿼터나리오 국제건축상 금상을 수상했으며 92년에는 중국 하이난(海南)의 '868타워'(86층짜리 호텔과 68층짜리 아파트를 함께 지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국제현상설계공모에 당선해 한국건축의 성가를 세계에 알렸다. 12일 중국에서 계약을 마치고 막 돌아온 그를 만났다.

(사진기자를 보며) "전에 어떤 스님은 사진 찍는 것을 하도 어색해 해서 사진기자가 하루 종일 필름없이 빈 카메라로 찍는 척을 하다가 자연스러워지니까 그제사 필름을 넣었다고 한다. 저것도 빈 카메라 아닌가."

―사진 찍는 것이 어색한가.

"(웃으며) 내가 그래도 94년에 맥심커피 광고에도 나갔던 사람이다. 모델료를 4,000만원이나 받았다. 그런데 이 회사가 굉장히 문화적인 회사다. 계약서를 쓰는데 보니까 갑이 나고, 을이 회사였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니까 '돈을 받는 사람이 당연히 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서를 쓰자마자 모델료를 다 주더라."

―이번에 중국에서 설계를 맡은 건축물은 무엇인가.

"샤먼은 인구는 120만 정도이지만 중국의 대표적 개방도시이다. 스포츠단지는 샤먼시가 국제공항, 컨벤션센터와 함께 관광 레저의 중심으로 짓는 것이다. 컨벤션센터 바로 옆 대지에 야구장 테니스코트 쇼핑센터 공원 호텔이 들어선다. 테니스코트는 윔블던과 똑같이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다."

―중국과는 여러가지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868타워' 국제현상설계로 알려졌지만 이미 1988년부터 중국을 드나들었다. 90년에는 베이징아시안게임 자문위원도 맡았고 94년에는 베이징 서부지역 20만평에 대한 재개발 프로젝트인 '경문여유성(京門旅遊城)' 현상설계공모에 역시 당선돼 이곳의 설계를 맡았다. '경문여유성' 시공은 싱가포르사가 하고 있지만 내 마스터플랜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868타워'는 건축주가 수감되는 바람에 시공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어떤 인연으로 중국과 이런 작업을 하게 됐나.

"중국인들은 실력이 있으면 일을 맡긴다. 스포츠단지는 전부터 교분이 있던 대만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우진구(吳經國)씨가 건축주인데 중국인이 설계를 하다가 제대로 되지 않자 우씨가 '아무래도 류춘수를 불러야겠다'고 해서 내가 맡게 된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건축 수준이 높다는 의미로 봐도 되나.

"그런 지역성을 떠나야 한다. 일본 싱가포르 미국 전세계의 건축가들이 중국에서 설계를 맡고 있다. 서울사람이 대구에서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한국 사람이 중국 가서 건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한국 건축의 쾌거'라는 식으로 쓴다면 우물 안 개구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작업을 하면 한국과 비교해서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있을텐데.

"가르칠 것은 하나도 없고 배울 것만 많다. 중국은 국토의 크기, 사람수, 역사적인 백그라운드, 이런 데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상하이를 자주 들르는데 시민의식, 관리(공무원)의식, 미적 감각, 이런 것들이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 지금 샤먼에 짓는 스포츠단지 건축주가 대만 IOC 위원이라는 사실만 봐도 대만―중국 관계가 남북한 관계와 비교되지 않는가. 대만과 중국은 정부 관리들끼리는 대화를 안 하지만 물밑에서 수, 수, 수만명이 투자하고 땅을 사고 세컨드와이프를 얻고 동업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높은 사람끼리 쓰잘데기 없는 회담만 하다가 결과는 아무 소득이 없고 철로를 연결해도 갈 사람이 없는, 그런 허튼 짓을 하고 있다. 대만에서 중국 가려면 홍콩을 거쳐야 한다는 것, 중국에서 대만 가는 것은 어렵다는 정도만 있지 그 밖에는 아무런 정부 간섭이 없다. 그러니까 사람끼리 왕래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정부가 간섭을 하니, 국제적인 감각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다. 지금 전세계가 나라마다 무슨 마스터플랜을 싸고 국가를 이끌어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부 간섭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 사립대 건물 하나 짓는 것도 일일이 교육부가 간섭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교육부만 없으면 세계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건축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건축이란 과학과 인문사회과학과 예술, 이 세가지를 다 합친 것이다. 모든 문제가 다 건축적인 문제이다. 88년부터 칭화(淸華)대 초청강연을 갔는데, 칭화대에 가보면 머리 좋은 놈들이 다 이공계에 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대에 들어온 놈들도 고시공부를 한다. 고시라는 게 학교 다닐 때 보면 창조적인 머리 쓰는 놈들보다는 기억력 좋은 애들이 붙는 과목이다. 그런데 이런 고시 출신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까 머리 좋다는 애들이 고시 붙을 생각만 한다.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걱정스럽고 나라도 걱정스럽다. 우선 평준화라는 것을 빨리 포기해야 한다. 지구상에는 평준화란 하향적 평준화만 가능하지 상향적 평준화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이야기를 하면 몇 평짜리, 얼마짜리 아파트에 시공사가 얼마인가, 이게 건축 이야기이다. 전에 글로도 썼지만 상암 월드컵 경기장 완공식에서 대통령이 치사를 하는데, 이처럼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어주신 시장 대한축구협회장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바로 옆에 앉아있는 건축가를 말 안하더라. 한국의 문화적 풍토가 이렇다."

―중국에서는 다른가.

"92년 즈음 '868 타워'를 설계하면서 지질조사 기후조사 내역을 (하이난시 정부에) 달라니까 (손가락길이만큼 손대중을 하며) 이만한 책자를 주더라. 거기에 지질이나 기후변화는 물론이고 1940년부터 지진 태풍 강풍 정도가 아주 상세히 연도별 지역별로 기록되어 있더라. 내가 봉화에 집을 지으려고 지적도를 달라고 했더니 집을 지으려는 장소 바로 앞에 있는 길이 지적도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없어진, 일제때 만든 농로는 표시되어 있었다. 1932년인가, 1928년인가 만들어진 지적도가 그대로인 것이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시골농토는 대부분 지적도 정리가 안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로가 있는 데는 집을 지을 수 없고, 도로가 없는 데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입로를 만들지 않을 것이면."

―그래서 어떻게 했나.

"나야 더 잘됐지. (지적도상) 농로 옆에 지으니까 길가가 아니라 더 한적해서 좋고, 농로의 흔적을 살려서 진입로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적도가 건축의 기반이고 생활의 기반인데 이런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공무원들이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기초가 없는 데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건축 관련 법규는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적어놓아서 어떤 전문가도 다 따를 수가 없을 정도이다. 겨우 그 법을 지켜서 설계해놓으면 이번에는 주민동의서를 받아오란다. 이것은 국가가 국가이길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간의 이해관계를 정부가 나서서 조정하지 않으니까 노조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한국의 건축가가 외국의 건축물을 만들 때 차이점이 있지 않나.

"나라의 차이보다는 건축가 개개인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건축에서 설계에 필요한 객관적 조건을 컨텍스트(context)라고 한다. 미국 맨해튼에 건물을 지으면 지질이 어떤지, 누가 사는지, 건물 용도는 무엇인지, 바람과 온도, 밖을 내다봤을 때 숲이 보이는지를 살피듯 봉화에 집을 지으면 역시 앞의 개울과 뒷산, 주민들이 집을 봤을 때의 기분을 지질 기후와 함께 살펴야 한다. 컨텍스트가 다르니까 설계가 달라질 뿐 설계의 기본은 똑같다. 좋은 건축가는 이런 컨텍스트에 잘 맞춰서 사람을 배려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건축가에게는 사람을 배려하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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