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택 임대 시스템은 한국과 크게 다르다. 일본은 전세가 없고 모두 월세다. 월세는 지역과 교통편 등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도쿄의 경우 8∼10평 정도의 집이 약 5만엔(50만원)에서 12만엔(120만원)까지 한다.임대 계약 시에는 퇴거 때 필요한 수리·청소비용으로 한국의 보증금과 같은 '시키킹(敷金)'을 미리 내고 한국의 권리금격인 '레이킹(禮金)'으로 한 달치 월세 혹은 그 2배 정도의 돈을 더 낸다. 여기에 부동산 업소에 한 달 월세 정도의 소개비를 지불하는 것이 보통이다.
임대 광고 등에서 '敷2 禮2'라고 하면 시키킹이 한달 집세의 2배, 레이킹이 한달 집세의 2배라는 뜻이다. 시키킹의 경우, 퇴거시 집 상태가 좋으면 좋을 수록 많은 금액을 다시 돌려 받지만 레이킹의 경우는 환불이 전혀 되지 않아 특히 학생들은 되도록 레이킹이 적은 집을 선호한다.
내가 일본에 온 4,5년 전에는 레이킹이 보통 한 달 월세의 2배였는데 요즘은 한 달 월세만큼인 집이 많아졌다. 한창 호황기에는 레이킹이 한 달 월세의 5배인 곳도 많았다고 하니 그 때와 비하면 일본경제가 예전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위의 일본인 중 40대 후반의 한 대기업 연구원이 최근 강아지를 기를 수 있는 새 맨션을 대출 받아 구입해 이사했다. 개인주의적이고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평범한 40대가 독립된 가정집이 아니라 공동주거형식의 맨션을 선택하는 것은 예전 같으면 드문 일이다.
일본에선 예전부터 가정집의 수요가 많았고 맨션은 독채 가정집에 살기 전의 절약책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싸고 편리한 맨션이 많이 공급되는데다 결정적으로 주택 대출 금리가 낮아져 맨션 매매 붐이 일고 있다. 디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의 은행 금리는 날로 낮아져 요즘엔 가장 낮은 주택대출 금리가 연이율 1%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는 봉건 시대를 거치면서 '일국일성(一國一城)의 주인'이라는 말이 생겼다. 하나의 나라는 토지, 하나의 성이란 집을 뜻하는데 토지와 집을 갖는 것은 예전부터 일본인들의 인생의 목표였다.
거품 경제 시대에는 토지나 집을 가지고 월세를 받는 것이 손쉬운 재산 증식의 수단이어서 지금의 한국과 같은 집 값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거품 경제의 몰락 이후 이 같은 일본인들의 꿈도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거의 0%에 가까운 대출 이자 덕분에 '일국'은 못해도 '일성'은 더욱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김상미 日 도쿄대 박사과정 '한국N세대 백서' 저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