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 내용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광복절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데다, 올해의 경우는 노 대통령 취임 6개월과 물려 있다는 점도 일조를 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얽히고 설킨 국정 현안이 즐비해 대통령이 무엇인가 가닥을 잡아줘야 한다는 요구도 작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중요한 연설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휴가 때부터 내용을 구상하고 상당부분을 직접 작성하는 등 취임사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가 당연하게 들린다.■ 역대 대통령들은 8·15 경축사를 통해 비중 있는 대북제의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시대에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음에도 1974년 남북 불가침협정 체결과 상호 문호개방, 토착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 실시 등 이른바 평화통일 기본 3원칙을 내 놓았다. 박 대통령은 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 당하는 상황에서도 경축사를 끝까지 읽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82년 공산권 동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장소 의제 절차에 구애받지 말고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95년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협의를 갖자고 주장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여세를 몰아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 하지만 경축사에서의 대북 제의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실천력이 담보됐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대북제의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호의적 반응을 보여 온 적은 별로 없었다. 대북 제의가 어느 정도 실현됐느냐를 점검해 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그러기에 관심의 초점은 오히려 국정 방향 제시에 쏠린다. 시국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처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노 대통령의 경축사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만큼 국정이 난맥에 빠져있다는 얘기도 된다. 청와대는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식상해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축사가 추상적 이상론에 머물 경우 실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취임 6개월이 됐으니 핵과 금강산 관광 등 북한 문제, 노사갈등과 한총련 사태, 신당 등 정치현안과 청와대 도덕 재무장 필요성 등의 현안에 대해 보다 정리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분명한 개혁의지에도 불구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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