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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리워진 소설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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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리워진 소설가들

입력
2003.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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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평' 가을호에 신작 시를 발표한 이들은 특별하다. 시인으로 등단했다가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됐거나, 한참을 소설가로 걷다가 좀 늦게 시의 길을 밟은 사람들이다. 문단의 중진, 신예 소설가 5명이 여름에 만난 시의 뮤즈의 웃음이 한 편 한 편의 공들인 시로 엮였다.'만다라'의 작가 김성동(56)씨는 느지막이 시인이 됐다. 30년 "소설이 밥줄"이었던 그가 설악산 백담사 하얀 눈 속에서 노루 새끼를 만난 어느 겨울날 입에서 무슨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 말을 받아 적으니 이게 시가 아닐까, 하여 고은 시인에게 보냈다. 그는 "맛이 있고 격도 있다"는 고은 시인의 추천으로 98년 등단했다. 시 '무제(無題)'는 절 근처를 떠돌던 김씨가 최근 강원 평창 산골에 '절 아닌 절'이라는 뜻으로 '비사난야(非寺蘭若)'라는 문패를 단 작은 집에 자리를 잡은 뒤의 심정을 쓴 것이다. 그는 '나는 왜 또 이 산 속으로 왔나 물통은 또 어디 있나'라고 스스로 물은 뒤, '한번도 정식으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립다 사람들이 보고 싶다'며 세상살이의 외로움과 사람 냄새 그리움을 고백한다.

윤후명(57)씨는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로 등단, 시인 강은교 김형영씨 등과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했고 77년 시집 '명궁'을 냈다. 하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 꿈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등단 이듬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윤씨는 11년 만인 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산역'이 당선돼 꿈을 이뤘다. 소설가로 더 잘 알려졌지만 그간 세 권의 시집을 낸 그가 오랜만에 발표한 시 '사나사(舍那寺)에서 여쭙다'는 경기 양평 사나사에서 붙잡은 시상을 옮긴 것이다. 눈 앞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산길을 더듬어 찾아가다가 한때의 젖내나던 젊음을 만난다. '사랑을 알면서 젊음은 이미/ 병이 깊듯이/ 젖이 홀쭉해진 새 한 마리 키우며/ 젊음을 바쳐 그곳으로/ 가서 젖비린내를 맡는다.' 그는 이런 물음을 '여쭙는데', 그 질문이 그 자체로 인생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요…/ 이것이 무엇인지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박범신(57)씨도 습작기엔 주로 시를 썼다. 소설가로 문단에 나온 뒤 잊었던 시심이 93년 절필 선언 후 칩거하면서 되살아났다. 뒤늦게 시를 쓰면서 문학에 대한 열망도 새삼 찾게 됐다. 등단 30년을 맞아선 그간 쓴 시를 모아 시집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를 냈다. 그의 신작시 '지하도'에는 소설가 겸 시인이 된 스스로의 심정이 유머러스하게 쓰여졌다. '마흔 살조차 되지 않았는데 시인이면/ 무기징역 가령 쉰일곱 넘어서 소설/ 쓰는 놈은 교수형이라는 형법조항이/ 있으면 참 좋겠다.'

97년 같은 해 등단한 김연수(33) 이명랑(30)씨는 시인으로 출발했다가 소설가로 전업한 이들이다. 튼실한 소설 쓰기에 분주한 그들에게 시는 잠깐 멀리 있던 친구 같다. 김씨의 '두고보면 저녁은 내리는 게 아니라 오르는 것인데/ 물관을 보고 뿌리의 힘을 느끼듯/ 살랑살랑 빛을 뿜어올리는 어린것들을 보노라면'이라는 시구에서는 젊고 다감한 서정성을, 이씨의 '썩는다는 건 얼마나 황홀한 죽음인가?/ 귀를 기울여봐./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소리/ 보글보글 기포를 내며 사라지는 저 소멸의 소리를'에서는 식지 않은 열정을 만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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