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8월12일 승객 509명과 승무원 15명을 태우고 도쿄 하네다 공항을 떠나 오사카로 가던 일본항공(JAL) 소속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이륙 32분만에 추락했다. 탑승자 524명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네 명이었다. 오치아이 유미라는 이름의 여성 승무원을 포함한 생존자 넷 가운데는 12세 소녀가 포함돼 있었는데, 이 아이는 가벼운 찰과상만을 입었을 뿐 몸이 온전해 화제가 됐었다.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8년 전 오늘의 재앙은 일본 열도 전체를 슬픔으로 뒤덮었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일본인'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고가 터지자 일본 정부는 점보기가 추락한 산악 지대의 숲을 샅샅이 뒤져 사망자 520명의 시신을 모두 찾아냈고, 찢겨진 시체들을 하나하나 꿰매 본디모습에 가깝게 되돌려놓은 뒤 신원을 확인했다. 사고 당시의 하네다 공항 정비 책임자는 유족에게 사죄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고, 사고 직후 일본항공은 과격하다 할 만한 물갈이 인사를 통해 긴장의 고삐를 한껏 죄었다. 일본항공은 그 날 이후 '인명 사고 제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 날 참사를 당한 승객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도중에도 가족에게 유서를 쓰거나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메모로 남겨놓아 '기록의 민족'이라는 일본인의 명성을 다시 확인시켰다.
당시 미국 보잉사는 항공사측의 정비 소홀로 점보기가 추락했다며 사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일본항공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사고 주변 지역을 이 잡듯 뒤진 끝에 비행기 꼬리를 찾아낸 뒤 사고 원인이 점보기 자체의 결함에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보잉사는 결국 손해배상에 더해 자사(自社)의 점보기 생산 과정을 일본항공에게 조사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일본인, 이럴 때 무섭고 아름답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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