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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브랑쿠지 "새"에 대한 두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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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브랑쿠지 "새"에 대한 두 견해

입력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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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브랑쿠지는 위대한 조각가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기 미술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서 모딜리아니와 자코메티에게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 '공간의 새'는 미술이란 무엇이며, 미술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1927년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이자 사진작가인 스타이첸은 프랑스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 귀국할 때 세관에 미술품으로 신고했다.길고 매끄럽고 날렵한 형태의 이 작품은 추상에 가까운 청동조각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미술품은 면세였으나, 세관원은 이를 미술품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 조각은 '주방기구와 병원용품'으로 분류되었고, 스타이첸은 600달러의 세금을 물었다. 그는 여성 조각가이자 휘트니 미술관 설립자인 G. V. 휘트니의 도움을 얻어 소송을 걸었다. 재판에 이겨 브랑쿠지의 '새'는 미술품으로 선언되었다.

세관원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법정에서도 "왜 새에 머리나 발, 꼬리깃털이 없느냐?"는 미학적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 동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의 미학은 개인적 생각이기보다 사회적 통념이었을 수 있다. 추상미술은 잉태 때부터 오해를 많이 받아 왔다.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배꼽이 있을 자리에 눈을 그려 넣는 화가' 피카소 덕에, 미술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의 지평이 크게 넓어졌다.

눈 여겨 볼 대목은 미술에 대한 미국인의 안목이 높은가 아닌가 하는 점이 아니다. 미술품에는 세금을 받지 않고, 주방기구 등에는 세금을 물린 미국의 관세 방침이다. 신생국가로서 문화 역사가 일천했기 때문에 미국인은 더 미술을 육성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정책으로 반영되었다.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는 유럽 미술품 중 특히 인상주의 화가와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거장의 작품이 풍부하다. 문화는 보호정책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개성 있는 팝아트가 탄생해서 세계를 풍미했다. 매력적인 팝아트의 등장과 이런 문화적 풍토가 무관할리 없다. 뉴욕이 파리를 제치고 세계미술의 중심이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조세정책과 관련해서 한국 미술계에 해묵은 고민거리가 있다. 1990년 미술품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미술품 양도소득 종합소득세라는 골칫거리다. 당시 투기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은 그림과 조각을 투기대상이나 사치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 법이 불러올 폐해를 막기 위해 미술계는 2∼3년마다 큰 진통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법 시행이 계속 미뤄져 왔다. 다시 내년부터의 적용을 앞두고 예총 민예총 미협 화랑협회 미술평론가협회 고미술협회 등 문화·미술계가 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 법은 미술품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명분 상은 그럴 듯하나 실속도 없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재 작가들은 창작소득세를 내고 있다. 또 화랑 경영자들도 미술품판매에 대한 부가세와 사업소득세를 내고 있어, 이 부분만 철저하게 관리하면 조세상의 문제는 없다. 90년대 초 이후 미술계에는 계속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유명작가 작품가는 당시의 30∼50%에 불과할 만큼 하락했다. 양도소득세가 시행될 경우 가뜩이나 침체된 미술계가 한층 더 위축되어, 한국미술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 법은 예술가의 꿈과 창작의지에 상처를 주고, 화랑인의 신념을 해치게 될 것이다. 이 법을 유예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호소력 있다.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극소수 작가를 제외하면, 예나 이제나 대부분의 화가·조각가는 가난하다. 빈곤을 벗삼아 신념에 사는 예술인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미술 진흥책을 도입해야 할 때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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