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1일 현대측으로부터 수백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긴급체포 함에 따라 현대비자금 '150억+α' 사건 수사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개인수뢰 사건에서 구 여권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검찰은 최근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 현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서 권씨의 금품수수 사실에 대한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을 상대로 150억원 부분만 조사했다"는 기존 입장과 달리 이날 검찰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정 회장에 대한 1차 소환조사에서 권씨 관련 부분을 추궁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이 권씨에 대한 금품제공 사실을 시인한 뒤 심리적 부담을 못 이겨 자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구 여권을 상대로 한 현대의 정치자금 제공설은 특검 수사 때부터 줄곧 제기됐다. 4·13 총선 직전 현대가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권씨에게 전달했다는 내용도 그 중 하나였다. 특검 수사를 전후해 구 여권측의 법률 자문에 응했던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수백억원 수수설에 대해 권 고문에게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 '현대상선한테 받은 것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이 말은 현대상선이 아닌 다른 현대 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한다는 의미로 들렸다"고 밝혔다.
검찰은 권씨가 받은 돈의 성격과 관련, 단순한 정치자금이 아니라 현대에 대한 특혜를 반대급부로 한 대가성 자금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상반기 현대는 '왕자의 난'을 거치며 극심한 경영권 분쟁상태에 있었고 공적자금투입 여부에 그룹의 명운이 걸려 있었다. 또 대북사업에 대한 정부지원이 절실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계승여부가 불투명했던 정몽헌 회장이 '대북사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정치권에 돈을 뿌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품수수의 대가성이 입증될 경우 권씨에게는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권씨의 정치자금 수수는 여권을 중심으로 엄청난 사정한파를 예고하고 있다. 권씨가 4·13 총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리한 민주당 공천의 최고 결정권자였으며 신진 영입 인사들을 중심으로 막대한 물적 지원을 제공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당시 박빙의 승부를 다투던 수도권 후보들에게 권씨측이 개별적으로 10∼20억원을 지원했다는 설이 정가에 파다했었다. 통상 정권 실세들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 야당쪽에도 상당액의 자금이 '보험금' 명목으로 건네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검찰은 여야 정치인 7∼8명에게 현대 비자금이 흘러간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서울지검 공안1부의 한나라당 공천헌금 의혹 수사와 더불어 이번 사건 수사가 여야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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