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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정운경의 신문만화 "왈순아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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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정운경의 신문만화 "왈순아지매"

입력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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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만화는 제목 자체가 일반 명사로 굳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의 인기 만화였던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등은 이제 정의를 위해 싸우는 힘세고 용감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또 일본에서는 '크레용신짱'(우리에게는 '짱구는 못 말려'로 알려져 있다)이라면 말썽꾸러기 남자 유치원생을, '사자에상'은 수더분하고 가정적인 주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자에상'은 4칸 짜리 만화로 20세기 중반 이후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온 가정만화다.우리에게도 '사자에상'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려온 주부 만화주인공이 있다. '왈순아지매'가 그녀다. 각박한 세상을 억척같이 살아왔던 이 땅의 아줌마, 왈순 아지매는 전후 한국적 상황이 만든 '억척 아줌마'의 대명사다.

정운경(69·본명 정광억) 화백의 신문만화 '왈순아지매'는 1955년 한 여성잡지에 첫 선을 보인 뒤 1964년 6월 '대한일보'를 거쳐 1975년 중앙일보에서 연재를 이어 2002년 12월24일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47년 동안 독자를 웃기고 울렸다.

'왈순아지매'라는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만들기까지는 만화가의 깊은 고심이 있었다. 정 화백은 "50년대 중반, 당시 월간 '여원'편집장이던 소설가 최일남씨가 새로운 형태의 가정만화 연재를 의뢰해 와서 두어 달 고심했다"고 회고한다. 정 화백은 주인공의 컨셉을 '억척같고 당찬 주부'로 설정하고 이에 걸맞은 이름을 찾느라 서울시내 가정집 문패를 두루 살피며 머리를 싸맸다는 것. 우연한 기회에 사촌 형님 댁을 방문했다가 형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 친구 분을 본 순간 '이거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그 여성의 이름이 이월선이었으며, 생김새나 말투가 여장부 스타일이었다는 것. 왈순아지매는 바로 이 '월선'씨에게서 나온 것이다.

왈순아지매가 신문시사만화로 절정의 시사감각을 드러낸 시기는 중앙일보 연재 이후 20여년 간이다. 한 가정의 일을 빗대 시국을 알싸하게 풍자하는 맛이 백미였다.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정권을 향해 가냘퍼 보이지만 신랄한 '촌철살인'의 풍자 칼날을 놓지 않았던 우리시대의 대찬 여장부. 그게 왈순아지매였다.

인기만큼 왈순아지매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았다. 처음 왈순아지매가 연재될 당시의 주인공은 식모(가정부) 신분이었다. 그래서 왈순아지매는 날마다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든가 쟁반에 받쳐든 물 컵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연재횟수를 거듭할수록 가정부라는 위치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 연재 10여 년 후 어느 날부터인가는 슬그머니 '안방마님'으로 둔갑해 버리고 말았다. 워낙 장시간에 걸친 교묘한 '신분상승'이어서 독자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왈순아지매는 연재초반부터 인기를 끌었고 그 여세를 몰아 같은 이름의 영화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80년대 초 민주화 학생운동이 한창일 때는 서울 신촌부근의 학생데모에 참여했던 한 여학생이 "왈순아지매 만세!"를 외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세기에 가까운 국민적 사랑을 업고 지난해 '만화의 도시' 부천에 '왈순아지매 거리'가 조성되기도 했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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