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시 '한총련 딜레마'에 빠졌다. 정권출범초 한총련에 대해 전향적인 정책을 펴다 5·18 시위로 곤욕을 치른 데 이어 다시 미군사격훈련장 기습점거 시위가 터지자 난처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측의 반발이 예상외로 강하고, 6자 회담이 임박해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 듯 정부는 일단 강경 대응으로 기조를 잡았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일부의 과격행위를 갖고 학생운동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는 신중론도정부의 초기 대응은 단호하다. 9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정책 조정회의는 시위 관련자를 엄중 처벌함은 물론 한총련의 노선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경찰도 미군 관련시설 주변에서의 집회·시위를 엄격히 관리하고 문제가 일어나면 경비 책임자를 문책키로 하는 등 분위기를 다잡았다.
정부가 이처럼 강경 기조를 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가 이달 말로 예상되는 6자회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전례 없이 주한미군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8일 외교부와 국방부에 이어 청와대까지 나서 미국측에 유감을 표명하고, 고 총리가 직접 배후세력 색출과 엄단을 언급한 점 등은 정부의 절박한 사정을 알게 한다.
정부는 또 이번 시위를 계기로 주중에 치러질 8·15 관련 행사가 반미 행사로 변질될 가능성에 주목, 미리 화근을 자르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지난 해 여중생사망 사건 이후처럼 반미 분위기가 퍼지면 경제 회복 등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선 한총련 수배 해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한총련의 요구사항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왔는데도 5·18 행사에 이어 또 다시 정부를 곤란하게 만든 것에 대해 괘씸죄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시위 가담자에 대해 군사시설보호법 뿐만 아니라 형량이 다소 무거운 외국국기모독죄를 적용하는 것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수배 해제 철회 등에 대해선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강경 일변도로 나갈 경우 "한총련의 과격행위는 정부의 유화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을 수용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 또 "정부가 너무 강하게 나가면 한총련 강경파의 입지만 살려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배 해제는 단순 가입자 등 경미한 법규 위반자를 위한 조치인 만큼 이번 사건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