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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우리 아들 딸들의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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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우리 아들 딸들의 잠자리

입력
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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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안의 성 범죄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병들의 근무환경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군의 여러 조건이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걸맞은 수준으로 개선되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사람들은 열악한 현실에 놀라고 있다.특히 TV뉴스에서 사병들의 침상을 보고 가슴 아팠다는 사람들이 많다. 몸이 서로 닿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서 자다 보니 성범죄가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 기자의 지적이었는데, 성범죄 이전에 너무나 비인간적인 잠자리다.

서있는 자세로 누울 수 밖에 없는 침상에서 병사들은 자면서도 "차렸!"해야 할 형편이다. 내무반 상황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무더위 속에서 그 광경을 보니 화가 치솟았다. 내무반이라기 보다는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도대체 이 나라는 병사들을 무엇으로 보고 그런 잠자리에서 재우고 있나. 군 간부들이나 국방장관은 그동안 얼마나 강도 높게, 얼마나 줄기차게 시설 개선을 요구해 왔나. 국회의원들은 군 내무반 시찰도 안 했나. 자기 눈으로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

병영 안의 성범죄도 이런 허술한 체제에서 마음 놓고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병사들을 자식같이 아끼며 불편이 없나 보살피는 군대였다면 이처럼 오랫동안 성범죄를 방치했을 리가 없다. 다 큰 성인들이니 각자 알아서 대응하라는 분위기가 성범죄를 키웠다.

최근 국방부가 발표한 실태 조사를 보면 기가 막힌다. 한 대대장은 사병에서 중위까지 부하 11명을 사무실 등에서 추행했다. 한 상사는 병사 11명을 추행했다. 자고 있는 여군 장교를 추행한 사병도 있다. 계급과 직책,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범죄가 일어났다.

국방부는 뒤늦게 병영문화 개선 및 처벌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성범죄를 군 형법상 죄목으로 신설한 것은 군대 내 성범죄를 덮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성범죄를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에 따라 소대단위 침상형으로 돼 있는 내무반 막사가 분대단위 침대형으로 개선된다. 20∼30여명이 나란히 누워 자던 침상형 막사가 8∼9명이 함께 쓰는 침대형 막사로 바뀌면 한결 나아질 것이다.

현재 병사 1인당 공간은 0.7평, 폭 72㎝의 매트리스 2장에서 3명이 자고 있으니 한 사람에게 허용된 공간은 50㎝ 폭이 채 안 된다. 똑바로 누워 잠자고 아침에 깰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침상 예절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병사 1인당 3평, 캐나다 독일 중국은 2.6평이다. 안보가 이처럼 중요한 나라에서, 경제발전을 그렇게 자랑해 온 나라에서, 군의 기본 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니 부끄럽다. 멀리 시찰하러 갈 것도 없이 병사 1∼2명이 방 하나를 쓴다는 주한 미군 막사를 봤으면 될 텐데, 어이가 없다. "특권층 아들들은 군대 안가잖아요"라는 비아냥에 할말이 없게 됐다.

병사들의 막사만이 문제가 아니다. 장교들이 거주하는 관사는 12∼15평형이 대부분으로 심하게 낡고 비좁다. 방이 2개뿐이라 아들 딸이 있는 경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족들이 우울증에 걸릴 정도라는 호소도 나온다. 국방부는 관사도 24∼32평형의 국민주택규모로 개선할 계획이다.

2008년까지 앞으로 5년간 총 5조원을 내무반과 관사 개선에 사용할 예정이다. 군의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미뤘던 시설 개선을 들고나온 셈인데 정부도 국회도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장병들이 쾌적한 시설에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장교들의 관사가 일반중산층 주택은커녕 빈곤층 수준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군사정부 시절 군 관사 등의 개선을 추진한 이래 오랫동안 이를 외면했던 것 같다. 내무반과 관사의 대부분이 25년 이상 된 노후시설이다. 우리의 아들들, 아니 아들 딸들의 잠자리가 이처럼 나빠서는 안 된다.

나라를 지키는 젊은이들이 고통스럽게 지낸다면 국가안보가 튼튼할 수 없다. 장병들의 잠자리가 습기로 눅눅하다면 안보의 한 축에 곰팡이가 핀 것이나 다름없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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