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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鄭회장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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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鄭회장이 남긴 것

입력
2003.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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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부딪힌 갈등과 고뇌가 얼마나 크고 깊은 지 당신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실감합니다…. 그 고뇌를 당신은 혼자 죽음으로 삭였습니다."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영결식이 열린 8일 오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쇼팽의 '장송행진곡' 속에 박 홍 서강대 이사장이 추모사를 낭독하는 동안 장내는 내내 숙연했다.

정 회장이 4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후 정·재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은 그를 '민족화합의 새 길을 연 선구자'라고 칭송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통일된 나라를 꿈꾸다 좌절했지만 그 꿈을 새롭게 심어주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도올 김용옥씨의 평가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정 회장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죽음도 헛되지 않게 된다. 많은 이들이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선친의 유지를 이어 남북화해와 경제협력에 역사적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됐다는 동정여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뜻이 숭고했다 하더라도 정치권에 기대 무리한 대북사업을 추진한 책임에 대해서는 정 회장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 분식회계를 했다거나, 비자금을 조성, 정치권에 제공했다면 실정법 위반이다.

정 회장의 죽음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민간기업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의 남북관계 개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고인이 유서에 당부한대로 남북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남북사업은 계속 추진돼야 하지만 그 방법은 철저히 국민적 공감대와 투명성, 사업적 토대 위에서 합리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고인이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유서에 남기고 싶었을 간절한 바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종수 경제부 기자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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