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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조동일 \\'한국문학통사\\'(제3판) 1~6(지식산업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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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조동일 \\'한국문학통사\\'(제3판) 1~6(지식산업사, 1994)

입력
2003.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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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한창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8권 '고려생활관 2'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인 정변과 대몽 항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고려 후기를 다루던 터라 민초들의 생활상을 담아낼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으로 같은 시기의 문학사를 다룬 조동일 선생의 '한국문학통사' 2권을 뒤적이던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조씨는 친정 아버지가 삼별초 난리통에 희생된 데다가 시집을 가자 시아버지가 일본 원정군에 끼였다가 목숨을 잃고 남편이 원나라 반란군의 침입을 막다가 전사했다." (위 책, 113∼114쪽)

고려 후기 문인인 이곡의 '절부조씨전'이라는 전기를 소개한 부분이었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며 당장 고려 시대 전공자인 필자에게 이 전기의 내용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씨라는 여인 한 명이면 전쟁 시기를 다룬 딱딱한 정치사적 서술에 단번에 살과 피를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씨의 일생은 마침내 '고려생활관 2'의 본문뿐 아니라 뒤 표지까지 장식하는 중심 소재가 되었다. 역사가가 지나치기 쉬운 결정적 소재를 제공해 준 데 대한 고마움에서 나는 말로만 듣1던 '한국문학통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문제 의식에서 다시 한번 깊은 흥미를 느꼈다. 한국사를 다루면서 내가 가장 답답했던 것은 도대체 세계사 속에서 한국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국문학통사'는 문학 분야에서 바로 그러한 한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짚어내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유럽의 중세 문학이 라틴어라는 공통문어에 기반한 보편 문학이었듯 동아시아의 중세 문학 역시 한문이라는 공통 문어로 창작된 보편 문학이었으며, 그 후의 서양처럼 우리도 한글에 기초한 민족(특수) 문학의 시대로 이행했다는 논지는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답답했던 내 마음에 청량제 역할을 해 주었다.

우연이었을까? 올 봄 백상출판문화대상 출판상 시상식에 갔더니 그 심사위원장이 바로 조동일 선생이었다. 선생은 심사평을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를 칭찬했다. 선생에게 인사를 하면서 " '한국문학통사' 같은 대작을 벌써 세 번이나 전면 개정을 하셨다니 놀랐습니다"고 했더니 선생은 딱딱 끊는 특유의 화법으로 대답했다. "지금도 전면 개정판을 쓰고 있습니다. 내년에 나옵니다." 사연인즉 선생과 출판사는 처음 책을 낼 때부터 일정 주기로 개정판을 낸다는 구두계약을 했다고 한다. 한 저서의 완성도를 두고두고 높여 나가 대작을 만들겠다는 집념이 저자와 출판사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대목이다. 선생과 헤어지면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책은 그렇게 만드는 거야."

/강응천(사계절출판사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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