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가스통 레뷔파, 1921~1985)두세기 넘게 죽음의 경계위에서 산악인들을 유혹해온 신비의 왕국은 어떤 산들이었을까. 18세기 유럽에서 태동한 알피니즘이란 말의 유래처럼, 알프스 산맥은 근대 유럽 산악인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동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해 독일과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남부 니스해안에서 끝나는 유럽의 혈맥으로 1,200㎞의 거대한 줄기 속에서 58개의 4,000㎙급 고봉을 비롯해 수많은 첨봉들을 품고 있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07㎙)을 비롯해 바르데 제크랑(4,101㎙), 마터호른(4,478㎙), 융프라우(4,158㎙), 아이거(3,970㎙) 등의 아름다운 고봉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1865년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마터호른이 알프스의 고봉 중 마지막으로 등정된 후 산악인들의 새로운 도전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히말라야의 고봉들이었다. 산스크리스트어로 ‘만년설의 집’이란 뜻의 히말라야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 K2(8,611㎙), 캉첸중가(8,586㎙), 마칼루(8,463㎙) 등 알프스 고봉의 배에 가까운 8,000㎙급 봉우리 14개를 비롯해 수많은 6,000~7,000㎙급 고봉들이 밀집해있다.
히말라야는 좁은 범위로는 동쪽 브라마푸트라강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인더스강 협곡에 이르는, 길이 2,500㎞, 남북 폭 200~300㎞의 산맥을 가리키지만, 카라코람 산맥, 힌두쿠시 산맥, 곤륜 산맥 등 중앙아시아의 모든 고봉군을 포괄해 불리기도 한다.
히말라야 고봉 도전에서 산악인들의 모험과 고행은 더욱 더 격렬해졌다. 수많은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이들 8,000㎙급 고봉들은 1950년에 와서야 자신의 문을 열었다. 프랑스 등반대가 8000㎙급 봉우리로는 처음으로 안나푸르나봉(8,091)을 등정하면서 히말라야 고봉 등정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1986년 라인홀트 메스터가 처음으로 8,000㎙급 14봉을 모두 등정한 이래로 14봉 완등자는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11명이 나왔고, 이 명예리스트에 엄홍길, 박영석, 한왕룡 등 한국인도 세 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산악인들의 발길은 그외 각 대륙의 고봉들로 뻗어나갔다. 남미대륙에 있는 세계 최고의 화산 침보라소(6,310㎙),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산이라는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 낮은 산들로 이뤄졌지만 1,500㎙나 되는 수직 벽들이 수없이 산재한 캐나디언 록키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히말라야 고봉이 차례로 등정되면서 산악인들이 더 이상 오를 고봉들은 없어졌지만 그들의 모험이 끝난 것은 것은 아니다. 탈레이사가르 북벽처럼 비록 낮은 산이라 하더라도, 오를 가치가 있다면 바로 그 루트가 산악인들의 영원한 안식처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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