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또 얼마나 납품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40여일 계속되던 현대자동차 분규를 맘 졸이고 지켜보던 협력업체들은 7일 모기업 임단협 타결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대기업 노조에게 돌아가는 파이가 많을수록, 그 부담이 산하 협력업체들에게 전가되는 게 업계 관행이기 때문이다.납품단가 낮춰 부담전가
자동차용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 완성업체들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임원 김모(43)씨는 "매년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납품단가를 5∼10%씩 깎아왔는데, 올해는 높아진 인건비를 보전하기 위해 더 낮추려 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에 따르면 납품단가를 낮추는 방법이 워낙 다양해 그 피해가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어음 결제기간을 늘리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에 속하며, 불량률 만큼의 부품을 추가로 제공하는 관행을 이용해 불량품 대체 부품 요구량을 늘려 사실상 납품단가를 낮추기도 한다. 김 씨는 "완성차 업체는 파업손실을 야근 및 잔업 등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부품업체들은 이를 만회할 길이 없다"면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파업 악순환으로 부품업체의 경영이 곪아 터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자동차 부품산업의 구조적 부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목청을 돋웠다.
부산의 현대자동차 납품업체 이모(60) 사장도 "경기 순환이 심한 것이 자동차업계의 특성인데, 불경기가 오면 종업원을 해고 못하는 완성업체는 그 부담을 우리에게 떠넘길 것"이라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사장은 또 "노조는 부당한 처우를 호소할 데라도 있지만 힘없는 중소업체들은 어디도 기댈 구석이 없다"며 "비슷한 처지의 납품업체 사장들끼리 나름의 대응 방안도 논의해 봤지만 괜히 '찍힐까' 두려워 속만 태우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내장부품을 생산하는 재하청업체인 울산 A사 정모(46) 사장은 "사장인 내 월급이 200만원, 직원들은 70만원 가량 받는다. 일요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꼬박 일해야 가공료로 한달에 약 6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6,000만원에 육박한다니, 현대차 직원 한 사람의 연봉으로 우리 같은 영세 하청공장을 꾸려가고 있는 셈이다"라며 허탈해 했다. 그는 또 "장기 파업에 일감이 끊겨 직원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다. 협상타결로 축배를 들고 있는 현대차 노조는 이런 영세 하청업체의 고충을 알기나 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정규직도 차별대우 설움
현대차는 이번 임단협에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관련 임금 7만3,000원 인상 성과급 200%,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품질향상 격려금 50만원 지급 장기근속 수당 신설 등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대체로 만족하면서도 이번 임단협 합의 내용이 임금 문제에 국한된 데다, 2, 3차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신분보장이 의무화돼 있지 않은 점을 들어 아쉬움을 나타냈다.
현대차의 경우 근로자 4만여명의 20% 가량인 8,000여명이 하청기업 근로자 등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신분 차이를 이유로 정규직에 비해 절반가량의 봉급을 받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규직의 해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경기 감원필요성에 대비해 비정규직을 일정부분 고용할 수 밖에 없다"며 "비정규직 차별의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노조의 지나친 신분보장 요구때문"이라고 말했다.
/울산=목상균기자sgmok@hk.co.kr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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