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강정이 돼 가는 남북협력기금을 놓고 공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사망후 여권과 학계에서는 정부가 이 기금을 투입해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을 떠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고, 야당에서는 반대로 법을 개정해 기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그러나 통일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기금은 올해 총액의 4분의 3이 차입금으로 채워지는 등 가만히 현 상태대로 두어도 부실덩어리로 전락할 것이 확실시 된다. 어떻게 쓸 것이냐를 놓고 논쟁할 때가 아니라 기금을 시급히 확충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 때문에 나온다.
남북협력기금은 1991년 정부출연금을 주요 재원으로 조성돼 이산가족 상봉과 문화·학술·체육분야 등 교류협력사업을 무상지원 해왔다. 북한에 대한 비료지원도 여기서 나가며 교역업체에 대한 대출과 손실보조업무도 맡고 있다. 특히 쌀 지원과 경수로사업 등에 대해서는 차관 형식의 대북지원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91년 252억여원으로 시작된 기금의 규모는 지난해에 1조원을 넘어섰고 올해에도 1조2,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규모 팽창의 원인이 98년부터 시작된 경수로사업비 지출을 위한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의 차입금 때문이라는 데 있다. 경수로 사업의 부담을 떠맡으면서 기금의 사정이 급격히 악화한 것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차입금 규모가 무려 9,230억원이나 돼 정부출연금 3,000억원의 3배를 넘어섰다. 700억원에 달하는 이자비용조차 차입금으로 메우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지난달 기금운용 실태에 대한 감사를 통해 2029년까지 경수로사업비 차관을 전액 상환받더라도 13조8,000여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고, 수출입은행도 관광공사를 통해 금강산관광에 투자한 900여억원의 회수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일부측은 대북사업의 정부 주도론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경수로사업의 전망 자체가 불확실해 기금 부실화를 막을 방책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6일 기금 조성·사용에 앞서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겠다고 나서자 "신축적으로 대처해야 할 남북관계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경수로사업의 재원을 일반예산으로 전환하거나 전기료 등의 일부 세목을 활용하지 않는 한 남북협력기금과 별도로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협에 대한 정부의 간접참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금이 경수로사업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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