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을 계기로 현대가(家)에 화해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정몽구(MK·사진)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과 정몽준(MJ) 의원 등 형제들은 정몽헌(MH) 회장 빈소인 서울아산병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등 '왕자의 난' 과 지난해 대선 등을 겪으면서 소원해진 관계를 '원상회복'하고 있다.
현대가의 화해는 4일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인 생애 마감이후 나흘째 '맏형'으로서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2000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후계자로 동생인 MH를 지목한 데 반발, '경영일선 퇴진 불가'를 선언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MK는 '왕자의 난' 이후의 앙금을 털어내려는 듯 극진하게 장례를 돌보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7일 "서먹했던 가족들이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주고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화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며 "각 계열사 임원들도 옛 친구를 만난 듯 서로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새벽 6시께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자살 현장에 가족 중 제일 먼저 달려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정몽구 회장은 빈소에서 문상객 영접은 물론 수저를 직접 차려 주며 감사의 뜻을 전하는 등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
형으로서 동생의 장례를 돌보는 건 당연한 도리지만 'MK―MH 불화설'을 생각하면 변화의 의미는 그리 가볍지 않다. 현대가는 6월 14일 넷째 아들인 고 정몽우씨 아들 결혼식에서도 형제들이 서로 떨어져 앉은 채 대화도 나누지 않아 주위를 썰렁하게 했다. 또 MH는 지난해부터 MK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끝내 거절당하는 등 두 형제간의 불화는 기정사실처럼 알려져 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MK는 은근히 도와줄 길이 없느냐는 식으로 떠봤지만 전문경영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면서 '형제간 우애'와 '투명 경영'은 별개라고 강조했다.
MK의 계동 사옥 복귀도 관심사다. 현대차는 지난해 7월 260억원을 들여 현대상사가 사용하던 2, 3층을 매입하는 등 정몽헌 회장측에게서 11·12층을 제외한 사옥 전체를 사들였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MK가 현재의 양재동 사옥을 떠나 현대의 역사가 서린 계동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고 점치고 있다.
한편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관련, 정몽구 회장이 "이를 지원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다른 분야에서의 지원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분석도 여전하다. 재계 관계자는 "전세계에 물류망을 확보한 현대상선과의 제휴 등 상생전략 차원에서 현대그룹을 지원하는 상황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