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것도 서러운데, 노구를 이끌고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더 서러울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경제보고서에서 1994∼1999년 한국의 노동탈퇴연령이 남성 67.1세, 여성 67.5세로 일본과 함께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일본은 남성 69.1세, 여성 66세였다. 그만큼 나이가 많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빈곤층의 경우 노인의 소득이 가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어떻게 변했을까. 퇴직 연령이 조사 당시보다 낮아졌다 하더라도 저소득층 비율은 늘어 고령층이 일을 그만두는 나이는 최소한 낮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퇴자들은 절반 이상이 가족 소득에 의존하거나 직접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다. 선진국의 경우 저축 연금 등으로 노후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인지 국민은행이 지난해 3,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축을 하는 이유로 노후 대비가 26.1%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자녀 교육비였다. 2001년 조사에서는 내집 마련이 노후 대비나 자녀 교육비보다 더 많았다.
■ OECD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탈퇴연령이 높은 원인이 수명 연장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라 퇴직금 등 사회안전망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금과 사회부조를 합해도 노인 수입의 18%밖에 안돼 노인들이 일을 놓지 못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법에 따라 퇴직금을 받는 근로자는 3분의 1에 불과하고 기업이 퇴직급여충당금을 다른 목적에 전용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도시화와 평균 수명 증가는 대가족 제도에 기반했던 노인 부양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제는 대가족 제도와 별도로 금융자원에 기초한 퇴직소득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 지난달 말 한 학술회의에서 효도법 제정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효도법 제정을 찬성하는 참가자들은 효의 문제를 윤리적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은 한계에 왔다며 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의 '부모 부양법'을 예로 들면서 노부모에 대한 부양 책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같은 연령에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격차는 심해진다고 조세연구원은 밝혔다. 젊어서도 고생했는데 늙어서도 별 희망이 없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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