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이 미국제 핵폭탄의 이름은 리틀보이였다. 9,000m 상공의 B-29 폭격기에서 떨어뜨린 길이 3m, 지름 71cm, 무게 4톤의 리틀보이는 TNT 약 2만톤의 폭발력을 발휘해 히로시마를 초토화하며 20만 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리틀보이의 투하로 일본은 급격히 전의(戰意)를 잃었고, 8월9일 나가사키(長崎)에 또 다른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그 달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리틀보이가 투하된 58년 전 오늘은 인류가 자신을 몰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드러낸 날이다. 제 힘에 너무 놀란 나머지, 인류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감히 세 번째 세계대전을 치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른바 냉전이라는 것은 핵무기의 전쟁억제력에 실린 위태롭고 공포스러운 균형이었다. 핵무기 보유국 사이의 직접적 전쟁이 없었다는 점에서 냉전기는 의사(擬似)평화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초강대국 사이의 대리전 성격을 띤 국지적 분쟁이 끊임없었다는 점에서 전쟁기이기도 했다. 핵 보유국 사이의 평화조차, 프랑스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표현을 빌리면, "위기라는 이름의 전쟁 대체물이 지배하는 평화"였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인류는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다시 말해 '팍스아메리카나'의 '팍스' 곧 평화는 미국이 만드는 위기와 공포에 짓눌려있는 평화고, 수많은 '작은 전쟁들'을 값으로 치러야 하는 평화다. 1945년 8월6일 이후 반전·반핵 운동의 구호가 된 '노 모어 히로시마'(No more Hiroshimas)는 선제 핵무기 공격의 능력과 의사를 지닌 유일한 나라, 미국에서 선창(先唱)돼야 한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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