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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강원도 양양군 말곡리의 소나무 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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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강원도 양양군 말곡리의 소나무 보호수

입력
200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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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한적한 산골마을로 답사를 떠났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자생하는 양양군 현북면 말곡리가 그곳이다. 들머리부터 곧고 아름다운 소나무로 가득한 이 산골마을에는 국가가 특별한 목적으로 보호하는 소나무숲이 있다. 그리고 한 그루의 소나무 보호수가 있었다.마을 초입에는 울진 소광리 소나무숲처럼 보전할 가치가 높은 생물의 유전자와 종 또는 자연생태계 등의 보전·관리를 위해 지정한 소나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 있다. 논둑을 경계로 해 야산에 터잡은 소나무숲은 100∼200년 내외의 소나무 자생지로, 쭉 뻗은 몸과 아름다운 외형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주위의 숲 대부분이 이와 견줄 만해 그런지 이 소나무숲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반면 마을주민들 스스로가 관리하였던 550년된 소나무 노거수의 존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들은 오랜 동안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해왔던 이 소나무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해 겨울(12월8일) 새벽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가지와 허리가 함께 끊어진 채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말곡리 마을주민들에게 이 소나무는 어떤 의미였을까? 1982년 이 소나무 노거수가 보호수로 지정될 때 이 나무의 관리자로 선정되었던 윤동식(당시 이장)씨는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까 소중한 식구가 내 곁은 떠난 느낌"이라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대신했다. 이 소나무 노거수는 언제부터인가 마을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어 있었다. 마을주민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일년에 한번씩 모여 소나무의 건강을 살피고 주변 풀들을 베어 소나무가 잘 자라도록 보살폈다.

주민들은 평소에도 이 소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무줄기가 뻗어 주변 밭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워도 소나무 가지를 건드리는 법은 없었다. 오래 전 옹이를 굽는 이가 밭에 닿을 듯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베어 옹이를 구웠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구운 옹이가 모두가 쓸모없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 없는 나무일지라도 이 마을주민들에겐 오랜 세월을 같이한 정다운 식구였다. 500여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살아 온 이에겐 이 소나무 노거수는 추억의 원천이며 고향이었다.

이런 소나무가 지난해 눈 피해로 쓰러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소나무의 생명을 우리들의 손으로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킬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자신과 한 몸인 가지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이 나무를 위해 정이품소나무에게 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가지를 받쳐주는 지지대 정도는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는 우리 조상들이 잘 가꾸어 유산으로 물려준 나무를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 특별히 지정한 9,400여 그루의 보호수가 남아 있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마을숲 및 보호수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 때 우리의 정신적 유산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면, 더 늦기 전에 애정 어린 보살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말곡리에서 어성전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서 우리를 반겨주던 정다운 소나무 노거수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배 재 수 임업연구원박사 forestor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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