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러시아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을 통해 경제적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러시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고급아파트와 빌딩들은 모스크바에 새로운 부동산 붐을 예고하고 있었다. 거리는 고급 외제 승용차로 홍수를 이루고 있고 각종 고급 외제 소비재 판매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었다.기업인들은 모스크바에서 빈 사무실을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매년 200억 달러씩 해외로 빠져 나가던 것이 올 상반기부터 순 유입으로 반전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러시아는 1998년 경제위기를 겪은 뒤 2000년 9%, 2001년 5%, 2002년 4.3%의 성장을 기록했고 올해는 5% 성장이 예측되고 있다. 2003년 5월까지 기업들의 세전(稅前) 법인이익이 지난해보다 64% 증가했다. 환율도 과거 2∼3년간 달러당 30루블 선에서 안정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이런 경제성장을 단순히 석유 수출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각이 바뀌고 있다. 단순히 석유 값 인상과 수출 증가 덕분이 아니라 국내 수요 및 투자 증가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제성장에는 푸틴 행정부의 공권력 회복에 따른 안정적 정치·행정 환경의 보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푸틴은 과두 재벌에 대한 과거사를 용인하는 대신 엄정한 과세와 정치·경제의 분리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최근 내년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최대의 가스회사 유코스의 대주주인 레베데프를 탈세와 불법거래 혐의로 구속하고 이 회사가 연루된 살인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푸틴은 1990년대 사유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거래에 대해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내년 대선을 앞둔 푸틴이 재벌들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대해 견제를 하는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유코스의 회장 호도르코프스키가 러시아 의회에 영향력 확보를 위해 로비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관료집단, 쌍트 페테르브루그 출신의 푸틴 지지자들과 정보기관원으로 구성된 그룹과 재벌들과의 싸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러시아 학자들은 보고 있었다. 재벌들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탈세를 저지르지 않는 대신 이전의 불법 사유화에 대해 눈감아 주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 봤다.
한국의 1970년대를 보는듯한 러시아의 정경 유착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에 큰 장애물이 될 것 같지 않다. 특히 향후 10년간 소득 배가 캠페인을 내세운 푸틴으로서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러시아의 경제 성장에 대해 서구, 미국, 일본, 중국 등은 나름대로 대러시아 전략을 세워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양국의 경제위기 이후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오히려 환수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필자의 눈으로는 향후 2∼3년간 기회를 놓치면 우리의 대러시아 진출은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북한 핵무기 문제에 휩싸여 대러시아 외교가 약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새롭게 경제적 활력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경제적 진출을 위한 국가와 기업의 공동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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