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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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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빛바랜 표현입니다. 헐벗거나, 심지어 통째로 뭉개진 산이 많습니다. 망가진 산의 물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며칠 가물면 바닥을 드러내고, 폭우가 쏟아지면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당연히 그 속에서 생물도 살 수 없습니다. 모두 떠나갑니다.산과 물은 공생관계입니다. 물이 풍성한 산의 조건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강수량이 많은 것이 첫째입니다.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계속 비가 오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숲이 건강한 것입니다. 단순히 나무만 많다고 건강한 산이 아닙니다. 많은 나무가 오랜 세월 유지되어야 건강한 산입니다. 수십 년 낙엽이 쌓이고, 비옥한 토양 속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갑니다. 스폰지 같은 토양은 장대비가 쏟아져도 넉넉하게 이를 품고, 가뭄이 웬만큼 계속돼도 품었던 물로 계곡을 적십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녹색댐'이라고 합니다.

수락폭포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폭포의 상류는 국지성 호우가 잦은 높고 깊은 산중입니다. 수락폭포는 지리산 자락에 들어있습니다. 지리산은 1967년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오랜 세월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땅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수락폭포는 물줄기가 언제나 장합니다. 그런 물을 갖고 있는 지리산 자락 주민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요즘 부쩍 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먹는 물, 바르는 물, 노는 물, 흐르는 물 등등.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도 결단력이 없으면 '물'이라고 부를 만큼 물을 하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더 나아가 이 땅의 근본적인 물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심장에 골병이 들었는데 모기에 물린 팔뚝에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장마가 길었습니다. 모처럼 대부분의 계곡에 맑은 물이 흐릅니다. 조금 훼손된 곳이라도 말이죠. 더위도 식힐 겸 계곡에 한 번 드시지요. 맑고 시린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이 땅을 풍요롭게 하는 근본적인 물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될 겁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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