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다음 공일엔 천렵이나 갈까?" 하고 으레 한두번은 제안하는 친구가 있다. '천렵'이라는 말을 들으면- 좀 과장해서 나는 전기가 오른 듯한 기분이 돼 버린다…> 에세이 '천렵'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글은 도회인을 자연으로 잡아 끄는 여름 천렵의 마력과 계절 즐기기로 독자를 안내한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서울이라는 지겨운 도회에서 사는 사람에게 그것은 귀에 솔깃한 말이라기보다는 온몸에 전기가 오르게 하는 말인 것이다. '천렵'이라고 하면 개울이나 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말한다…> ■ 언론인 홍승면의 20주기를 맞아 평론집 '화이부동(和而不同·나남출판)'과 음식 에세이집 '백미백상(百味百想·2권·삼우반)이 동시에 나왔다. '천렵'은 '백미백상'에 들어 있다. 이 책은 요즘 쏟아져 나오는, 어디 가면 어떤 음식점에서 어떤 음식이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다는 식의 소개서는 아니다. 한국과 동서양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과 지식, 경험을 털어넣어 끓인 전골 같은 교양서다. 산채 쏘가리 갈치 붕어 수박 새우젓 북경오리구이 짜장면 스파게티 등이 종횡으로 등장하는 이 책은 삶을 긍정하고 역사를 사유하게 해준다. 정성스런 음식처럼 맛있고 영양가 높은 독후감을 준다. 찌는> 여름이>
■ 현대적 신문문장의 개척자인 그는 한국일보에서 '지평선'과 '메아리'를 집필했고, 동아일보에서는 '횡설수설'을 썼다. '화이부동'은 방대한 평론집이다. 혁명의 날에 쓴 '지평선' '아, 슬프다. 4월 19일'은 불의를 증언하는 직필의 용기와 젊은이의 희생에 대한 슬픔과 울분을 아픔 자체로 기록하고 있다. <눈물이 앞서고 손은 떨려서 무슨 말부터 써야 좋을는지 모르겠다. 궁금한 것은 학생의 인명피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덜 죽고 다쳤으면 마음으로 안절부절 몸 둘 곳을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멀리서 아직도 때때로 총성이 들린다…>눈물이>
■ 57세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홍승면에게는 '천부(天賦)의 기자'라는 평이 따른다. 언론인이자 문장가인 김중배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지면에 날마다 황금알의 문장들을 생산해 내고 있을 때, 나는 거의 동시대를 먼발치서 뒤따라 걸었던 신문기자다. 대선배라기보다 스승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책 출간을 계기로, 40여년 전 이 '지평선' 난을 채우던 선배의 모습을 그려 본다. 그는 비분강개로 독자를 흥분시키지는 않았다. 식물성의 담백한, 그러나 비범하고 참신한 글을 남긴 명 칼럼니스트였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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