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새벽 동이 터올 무렵이었던 4일 오전 5시42분 서울 종로구 현대계동사옥 본관 건물. 1시간 전 출근해 담당 구역을 둘러보던 현대 사옥 청소원 윤모(63)씨는 건물 뒤 주차장 옆 화단 소나무 아래에 반듯하게 큰 대(大)자로 누워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1.5m 가량의 나뭇가지로 상체와 얼굴 부분이 가려져 있어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윤씨는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죽음이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윤씨가 마침 출근하던 주차요원 경모(51)씨를 불러 휴대폰으로 경찰 112에 신고한 것이 오전 5시50분. 경씨는 "현대, 현대 종로구 계동이요. 지금 사람이 떨어져 있는데 사망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고…"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신고했다. 이때까지도 이들은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의 신원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한 오전 6시5분. 전날 밤 사옥 후문 앞에 정 회장을 내려주고 주차장 승용차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운전기사 김모(57)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경찰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현장에서 정 회장의 죽음을 확인한 김씨는 비서실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 이어 119 구급대가 출동, 사망을 확인했다.
정 회장의 신원이 밝혀진 것은 비서실 직원이 나타난 뒤였다. 출근하던 중 현관 경비원으로부터 "정 회장이 어젯밤에 들어와 사무실에서 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비서실 최모(38·여) 차장은 열쇠로 집무실 문을 열었지만 불이 켜진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오른쪽 아래 창문이 열려 있었고 원탁 위에는 평소 정 회장이 사용하던 안경과 시계, 유서가 담긴 흰 봉투 3개 만 놓여있었다. 창문 아래로 경찰이 보였다. 화단으로 내려온 최 차장이 "정 회장이 맞다"고 신원을 확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 임직원과 정 회장 유족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고, 검찰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시신은 유족과 임직원들의 오열 속에 오전 8시10분께 선친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숨을 거뒀던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현대계동사옥 본관 12층에 있는 정 회장 집무실의 창문이 열려있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 등이 있는 것으로 미뤄 추락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정 회장은 갈색 구두에 캐주얼 차림이었다. 시신에는 출혈 흔적이 없었고 목 부위에 긁힌 흔적만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가능성은 없어 보이나 주변 목격자, 행적 등을 조사하고 있다"며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도 실시했다"고 말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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