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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물건에게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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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물건에게 말걸기

입력
2003.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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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인형한테도 인사를 하고 안 나오는 텔레비전한테도 화를 낸다. 성인이 되면 그런 태도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하게 된다. 물건에게 계속 말을 걸다가는 정신병원에 실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운전기사에게 "수고 많으십니다" 해야지, 버스 옆구리를 치며 "버스야, 왜 이제 오니?"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우리는 자꾸만 물건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특히 술에 취했을 때 그렇다. 가끔 전봇대를 향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왜 전봇대를 발로 차고 계세요?"라고 물어보면 "아, 이 자식이 나를 때리잖아"라고 씩씩거린다. 심지어 땅이 벌떡 일어나 자기 얼굴을 치더라는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사실 물건들은 모두 우리를 향해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집안을 둘러보라. 온통 비명소리다. 고장 난 가전제품들은 어서 고쳐달라고 아우성이고, 온갖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아 달라고 난리다. 음식들은 상해가고 있으니 어서 먹어달라고 하소연하고, 쓰레기들은 제발 버려달라며 바스락거린다. 물건들은 조용하지 않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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