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추이, 세계역사의 흐름, 그리고 국가발전 단계로 볼 때 지방분권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길이며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분권은 곧 권력을 나누는 것으로, 그 어려움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와 레닌 그리고 마오쩌뚱은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기치 아래 유혈 폭력혁명을 정당화하였다. 분권, 특히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간의 권력이동은 무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 신봉자들은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는 신념 하에 선거혁명을 통한 분권의 가능성을 확신하였다. 그것은 결국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 체계를 확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에 따른 수평적 분권은 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중앙과 지방, 그리고 위와 아래 간의 수직적 분권은 오랜 기간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불만과 시정의 촉구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 주민들은 조세저항, 집단민원, 주민소송 등의 무기를 가지고 중앙에서 지방 그리고 관에서 민으로의 권력이동을 강력히 촉구하였고, 기득권자들은 이에 서서히 굴복하면서 정부혁신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도 지방자치 부활로 이미 분권화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특히 지난 2년간은 분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역동적인 시기였다. 지방자치의 정신에 역행하는 입법과 정책에 맞서 시민사회단체, 학계 그리고 지방정치인들은 각종 선언문과 건의문을 내면서 주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는 최근 자립형 지방화와 분권형 선진국가 건설을 위한 '참여정부 지방분권 로드맵'을 발표하고 지방분권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발표된 지방분권 과제에는 행정 입법 재정 치안 교육 등 전분야에 걸쳐 국가개조 수준의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같은 로드맵대로 지방분권이 실천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의 추진주체와 절차가 보다 명확히 마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모호한 점, 그리고 분권의 추진과정에서 빚어질 여러 부작용과 반작용을 극복할 전략이 제시되지 못한 점 등은 해결되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지방분권의 당위성과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실천해 내는 우리의 의지와 전략이다. 분권을 거부하는 세력을 극복하고, 또 분권을 두려워하는 집단을 설득해서 분권화 사회를 성공적으로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첫째, 분권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의식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분권화는 당분간 제반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고,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며, 부패와 비리를 증대시킬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분권에 따른 긍정적 효과만을 기대하고 서두른다면 분권이 주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실패할 수도 있다.
둘째, "지방분권의 확대를 거부하는 곳은 다름아닌 지방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분권을 수용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권한을 이양할 때 지방정부는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자치역량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분권화는 훨씬 더 무능하고 부패한 지방정부를 출현시킬 수도 있다.
셋째, 분권의 점진적 실현은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방자치가 다양한 실험과 학습을 통해 그 장점을 살리려면 제도 선택의 결정권을 지방에 넘겨줄 필요가 있다. 만일 획일화한 제도로 분권을 밀어 붙이면 전국이 같은 후유증을 앓게 되어 실패하고 만다.
결국 지방분권은 실패할 수도, 또 후퇴할 수도 있음을 인식할 때 오히려 성공의 길이 보이게 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육 동 일 충남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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