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지겹도록 내렸지만, 막상 장마가 끝나고 며칠 무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물 생각이 간절합니다. 꼭 바다가 아니더라도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오미자냉채 생각도 나고, 내린천의 시원한 물줄기도 생각나고…. 머릿속은 온통 이런저런 물 생각으로 가득하네요.지금쯤 더위를 피해 물속에 몸을 담그고 계시다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물이 좋아도 우리가 인어공주처럼 물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죠.
나무들도 숨을 쉬기 위해 습지에서 땅위로 기근(氣根)을 올려 보낸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에 했지요. 하지만 낙우송이나 맹그로브 같은 나무가 아니더라도 물속을 터전으로 삼은 풀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겐 무슨 비결이 있을까요.
재미난 것은 땅에 근거한 식물들은 물을 잘 흡수하기 위해 뿌리를 발달시키는데(물론 지지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요) 반해 물속에 사는 식물은 뿌리가 잘 발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뿌리가 없더라도 물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요. 대신 산소를 얻어 호흡을 제대로 해야 하는 만큼 이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각기 터득하고 있습니다.
물속의 잎이나 뿌리들은 공기중의 산소를 공기구멍을 통해 흡수할 수 없으니 물속에 녹아 있는 적은 양의 산소를 흡수하거나 별도의 방법으로 산소를 뿌리까지 끌어들여야 합니다. 나자스말, 실말, 말즘, 검정말 같은 식물처럼 아예 물속에 잠겨 살고 있는 식물들은 물결따라 흐느적거리는 얇은 잎 전체를 통해 산소를 흡수한다고 합니다.
연꽃처럼 뿌리는 땅속에 있지만 잎을 땅 위로 올려보낸 식물들은 잎으로 산소를 받아들이고 숭숭 뚫린 구멍을 가진 땅속줄기를 거쳐 뿌리까지 산소를 보내지요. 물에 뜨는 줄기나 잎에 구멍이 많은 것은 물에 잘 뜨게 하기 위한 역할도 하지만 이러한 공기 이동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연꽃 뿌리인 연근의 경우 구멍 뚫린 줄기가 땅속에 묻혀 사니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전적으로 물 위에서 받아들인 산소를 물속 뿌리까지 공급하기 위한 것이지요.
개구리밥처럼 물 위에서 사는 식물도 있습니다. 잎에서 산소를 받아들여 삼투작용을 통해 산소를 효과적으로 뿌리로 보냅니다. 대부분의 식물이 공기구멍이 잎 뒷면에 있지만 개구리밥은 앞면에 있지요. 또 뿌리는 물을 흡수하기보다 물에 떠 있을 때 균형을 잃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물가에 자라는 평화로운 수생식물 같아도 각기 사느라고 열심이지요? 어려워도 가끔 휴가를 얻어 수생식물을 고즈넉이 바라보는 우리 팔자가 차라리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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