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의 상징적 의미자궁은 여성다운 신체적 매력과 함께 생식 능력까지 부여하는 여성 몸의 핵심기관 가운데 하나이다. 여성의 자아는 여성다움, 힘, 건강의 근원인 자궁의 존재와 기능에 따라 변화한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은 자궁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이를 중간에 제거하고 만다.
2001년에 발표한 이화여대 간호대 신경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중 자궁적출술을 받은 경우는 13.5%(1999년 의료보험관리공단). 프랑스 8.5%, 호주와 미국이 각각 17%로 자궁을 몸에서 들어내는 일이 전세계적 현상임을 알려준다.
도대체 무슨 잘못으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인생의 막바지에 자궁을 떼어내고, 이로 인해 인위적인 폐경이나, 우울증 등 신체적 정신적 아픔을 감내해야 할까.
자궁적출술의 가장 흔한 원인은 자궁근종
자궁을 제거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자궁근종 때문이다. 혹이라 하면 미세한 덩어리 정도로 연상하겠지만, 사실 10㎝가 넘는 거대한 양성종양도 많다.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할 수 있으나, 주로 가임 연령인 30∼45세에 많이 생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임여성(30∼45세)의 약 20%가 자궁근종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여성에서는 30∼50%가 자궁근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궁성은 가톨릭의대 산부인과 교수(대한 산부인과학회 이사장)는 "자궁근육 세포가 비정상적인 증식을 하면서 양성종양으로 성장하며 특히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고 말했다. 자궁근종의 발생 원인이 아직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난소의 기능이 왕성할 때 잘 자라고 초경 이전이나 폐경 이후에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다는 추측이다.
이외에도 자궁적출술은 악성 종양인 자궁 경부암의 치료를 위해서도 많이 실시된다.
모든 자궁근종을 치료할 필요는 없다
자궁근종은 일반적으로 자각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전체 자궁근종의 약 25%만이 증상을 동반하게 된다고 밝힌다. 그러나 어느 정도 크기가 커질 경우 환자들은 월경량 과다, 생리통, 부정기적 출혈 증상을 호소하며, 성교 통증이나 만성 골반 통증이 있을 수도 있다. 근종이 방광이나 직장을 압박하면 빈뇨 배뇨곤란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자궁근종 치료 원칙을 세울 때 중요하게 여기는 근거는 이 살혹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는 점이다. 자궁근종이 나팔관을 막으면 불임을 일으키기도 하며, 자궁 내막 근처에 있을 때는 배아의 착상을 방해하거나 조산,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 불임환자의 10%정도는 자궁근종과 관련이 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 자궁 살(근육) 안에서 자라는 '근층내 근종'이나 자궁 안에 매달려 있는 '점막하 근종'일 경우에는 반드시 치료해야 할 자궁근종에 분류된다.
다행히 자궁근종이 암으로 이행될 가능성은 0.1∼0.6%로 거의 없다. 그러나 남궁교수는 "폐경기 이후 무증상이던 자궁근종이 갑자기 커지거나 자궁출혈이 동반되면, 암의 일종인 육종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궁적출술은 최후의 수단이다
자궁근종은 증세가 없으면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다. 불가피하게 치료해야 할 경우라면 자궁적출술이나 근종절제술 호르몬요법 자궁동맥색전술 등이 적용된다. 물론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자궁을 제거하는 자궁적출술일 것이다.
그러나 자궁적출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의사들은 일단 출산이 끝났다고 판단된 여성환자에게는 자궁적출술을 거리낌 없이 시행하는 풍토였으나, 최근 들어선 되도록이면 자궁을 보존하자는 쪽으로 치료원칙이 세워지고 있다.
남궁 교수는 "수술 대상으로 삼는 여성환자의 기준이 점점 제한적으로 변하고 있다. 출혈 월경량 염증 냉 과다통증 빈혈 같은 증상 외에도, 암과의 관계 등을 고려, 수술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궁근종의 위치에 따라, 즉 자궁강 내에 있을 경우엔 자궁적출술을 시행하나, 자궁벽 밖에 있는 경우엔 되도록 자궁을 살리는 쪽으로 하고 있다. 자궁근종의 크기도 수술의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크기가 6∼7㎝정도라면 수술대상이다.
호르몬 치료는 출혈 예방이나 종양 크기를 감소시키는 일시적인 치료법일 뿐, 근본적인 치료법은 될 수 없다.
빈궁마마 자청, 옳은 일인가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대학병원에서 실시되던 자궁적출 환자 수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 자궁근종 환자에 대한 자궁적출의 기준에 대한 폭이 점점 좁아질 뿐 아니라, 자궁적출술의 또다른 대상인 자궁경부암 환자 수도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자궁암은 개인 위생과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자궁암 발생 자체가 크게 감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진단기술의 발달로 '0기암'(암이 발생하기 전 단계인 상피내암의 과정) 단계에서 대부분 자궁암이 발견돼 복강경 수술로 간단히 치료되고 있다.
놀랍게도 폐경을 맞았거나, 심지어 출산 계획이 끝난 중년 여성들 가운데는 스스로 빈궁마마를 자청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아직 자궁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궁 교수는 "자궁적출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환자는 물론 남편에게도 자궁적출술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환자들에게는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자궁적출술은 분명히 막아야겠지만, 자궁적출술이 남발되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일부 의사들은 환자가 '되도록이면 자궁을 살려달라'고 요구하면 재발 가능성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자궁적출술 아닌, 근종 절제술만 시행하기도 한다.
자궁적출술 이후
자궁적출술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였다 해도, 이를 크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전문의들은 자궁적출술을 받으면 비만, 조기 폐경 증후군, 성생활의 장애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첫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는 곳은 난소로, 난소까지 함께 절제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궁적출술만으로 갱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호르몬 분비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궁이 없어지면 더 이상의 생리는 없으므로 출산은 불가능해진다.
많은 여성들은 자궁이 없어지면 성생활에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고 배우자에게도 성적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만, 거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 부부관계는 수술전과 마찬가지로 가능하고, 성적 절정감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성적 반응은 감퇴하지 않는다. 수술 후 여러 신체적 증상이 좋아지면서 부부생활의 질이 높아졌다는 보고도 많다.
10여년 전 자궁적출술을 받았던 이화여대 간호대 신경림교수는 "여성성을 상실했다고 느끼는 환자들의 우울증은 의외로 심각하다"면서 "이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데 의료진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yjsong@hk,co.kr
상실감 의외로 커 남편 배려가 큰 힘
20여 년 넘게 자궁암이나 자궁근종 환자들의 진단이나 수술을 해오면서 아쉽게도 나는 환자들의 수술 이후 정신적인 변화나 정서 문제 같은 재활에 대해 거의 신경을 쏟지 못했다.
자궁적출술을 하면서 수술 자체로 인한 신체적 회복에만 정성을 기울였으나, 환자들을 오랜 세월에 거쳐 관찰하면서 자궁을 제거한 여성들의 정신적 신체적 상실감이 의외로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자궁경부암으로 자궁적출술을 받은 여성은 자궁근종으로 자궁적출술을 받은 경우보다 성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자궁암으로 자궁적출술을 받은 경우 단순 자궁절제술을 받은 환자보다 우울감 불안감 건강염려증 무력감 절망감 허무감 등이 높다는 보고가 많다. 물론 이 시기는 40대와 50대의 갱년기 우울증과도 겹칠 수 있기는 하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고 상심하는 환자를 위해 나는 의료진은 물론 가족, 특히 남편의 이해와 협조가 무척 중요하다고 느낀다.
자궁절제를 한 여성들에게 오는 우울과 불안감에는 배우자의 태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자궁적출로 인한 심리적 손상은 생리적 기능에도 나쁜 영향을 끼쳐 수술 후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의학적으로 보면 자궁 절제가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성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자궁적출을 받은 여성이 적출술 이후 정서적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가족과 의료진들이 전략을 세우자.
남궁성은 가톨릭의대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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