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외로운 존재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해주고 공감해 주기를 기대한다.사전 정의에 따르면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 욕구, 생각, 행동을 이해해주는 것'을 말한다. 어려서는 주로 어머니의 공감과 이해를 통해 사회적 스트레스를 이겨나간다. 아이가 학교에 갔다가 급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미주알고주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얘기하는 이유가 이해 받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커서 어른이 되면 어머니보다는 배우자나 연인을 통해 이해와 공감을 받으려 노력한다.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처 받고 토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음이 아픈 환자는 물론이고 몸이 아픈 환자도 이해와 공감을 해주지 않으면 매우 괴로워한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수술을 잘 받아도 병이 있어서 아이처럼 의존적이 되어 버린 환자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고통에 공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의사가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이해와 공감이라는 면에서 매우 취약하다.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사가 환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이해와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여유는 거의 없다.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는 겪어보면 금방 안다.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쉽게 자살하지 않는다. 약, 주사, 수술만이 치료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해와 공감도 매우 치료적이다. 이해와 공감에는 환자에게 보이는 관심, 주의 깊게 들어주고 동의함, 자상한 보살핌, 불안과 우울에 대한 배려 등이 모두 포함된다.
현대의학은 각종 첨단 진단기기, 치료기기가 환자와 의사간의 이해와 공감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최소공급에 초점을 맞추어 만들어진 국가주도의 의료보험제도 역시 환자와 의사간의 정서적 교감에 따른 치료효과를 배제하고 있다. 의료보험이 없었고 의사들이 '기술료'를 임의로('임의'라고는 하지만 시장경제의 통제를 받았음) 받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허술한 동네병원에서 나이 든 의사의 한마디에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지면서 몸의 병이 사라지곤 했지만 그런 일들은 이제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환자의 고통에 냉소하는 의사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 해도 병이 좋아질 까닭이 없다. 현대의학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해와 공감의 치료효과를 지금도 정신과에서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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