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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은밀한 몸·음란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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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은밀한 몸·음란과 폭력

입력
2003.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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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페터 뒤르 지음 박계수 최상안 옮김 한길사 발행·각 2만2,000원 2만4,000원여자는 왜 앉거나 쪼그릴 때 다리를 오므리는 등 성기를 감추거나 숨기면서 성적 매력의 발산을 제한할까? 왜 여러 사회에서 남자는 공공연한 상황에서 나체의 여자를 보면 시선을 돌리거나 그 비슷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에티켓이 생겼을까? 문명이 이런 예절을 만들어낸 것일까?

독일 브레멘대의 한스 페터 뒤르(60) 교수는 최근 10여 년 동안 독일은 물론 세계 문화사학이나 민속사학계에서 가장 논쟁적 저작을 발표하고 있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나체와 수치'(한길사에서 번역 출간)를 시작으로 낸 '문명화 과정의 신화' 시리즈는 서구 근대사회의 문명화 과정을 해부해 20세기 고전 반열에 오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역작 '문명화 과정'(1939년)을 겨냥하고 있다. 이번에 나란히 번역돼 나온 '은밀한 몸' '음란과 폭력' 역시 같은 의도를 담은 연작의 일부이다.

'은밀한 몸'의 역자가 소개한 엘리아스 이론에 따르면 서구의 중세 사회는 문명화한 사회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함부로 방뇨를 했으며 도시의 좁은 길목에서 공중목욕탕을 가기 위해 남녀가 나체로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공공연하게 성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야만인들이다. 엘리아스는 예절에 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한 16세기 이후로 문명화를 통해 이런 인간의 본능적 삶의 양식이 동물적 또는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돼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엘리아스가 문명화 과정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보는 것은 바로 권력의 보존과 확대이다. 상류계급은 문명화한 행동의 과시를 통해 하층계급에 대한 거리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위계질서를 확고히 할 수 있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신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지속으로 발전시키고 확산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이 다른 민족과 국가에게 '문명'을 가르치고 강요하려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뒤르는 엘리아스의 이러한 견해가 허상을 토대로 구축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여성의 음부에 대한 수치심은 문명화 과정과 상관이 없고, 인간의 폭력성 또한 본능에 내재한 것이며 문명화에 따라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은밀한 몸'에서 뒤르는 19세기부터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외음부를 추하게 간주하는 민족과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외음부를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겼던 사회에서도 성기에 대한 수치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왜 성기에 대해 이런 수치심을 느꼈을까? 성적 매력을 제한함으로써 남자들의 경쟁을 제한하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훨씬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 뒤르의 해석이다.

결국 뒤르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수치의 정도가 문화적 역사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그것이 문화 고유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생활 양식 전반에 있는 특징적 현상이라고 결론짓는다.

'음란과 폭력' 역시 '문명이 인간의 본능을 훈련하고 통제한다'는 통념에 대한 반론이다. 그는 이른바 문명 사회라고 일컫는 서구는 물론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행태를 다양하게 소개하면서 인간의 본성인 폭력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료 연구의 초인적인 성과"라는 세평이 모자랄 정도로 두 권의 책에는 수많은 도판과 문헌 자료가 가득하다. 특히 세계 각 지역의 성 풍속을 보여주는 그림과 사진은 포르노그래피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론 자체의 성과를 차치하고 자료 수집만으로도 경탄할 만한 책임에 분명하다. 후속작 '에로틱한 육체'도 번역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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