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지음·권남희 옮김 이가서 발행·9,500원살았을 때 별볼일 없던 남자가 죽었다. 남길 얘기가 없을 법한데,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죽은 화자가 관찰하는 일곱 명의 변태성욕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들은 가면을 쓰고 SM(사도마조히즘)을 즐기며 알고 지내던 남자들을 죽인다. 그들은 모두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를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거나,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형체 없는 존재가 되어 떠다니는 화자가 이 여자들의 단단히 봉해진 기억을 더듬는다. 여자의 눈 속을 이동해 시신경으로 들어가 뇌에 있는 여자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과학적으로 묘사된다. 섹스, 특히 SM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작가는 "거품이 꺼졌음에도 새로운 인생을 추구하지 않는 일본 남성의 삶이 모티프가 됐다"고 밝혔지만, 이 소설에서 소외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이 시대의 남녀 모두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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