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과 방송이 많이 쓰는 돌입이라는 말을 사전은 '세찬 기세로 갑자기 뛰어듦'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노조의 파업이나 대학생들의 수강거부를 보도할 때 쓰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청계천 복원공사 착공도 돌입이며 초등학교 방학도 돌입이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날씨 기사에도 돌입이 나온다. 행동의 기세를 전달하려는 의도라면 부분적으로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입은 돌발성, 불가측성이 전제된 행동이다. 파업과 착공이 예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들이 망명을 요구하며 베이징(北京)의 외교공관에 뛰어드는 행동이야말로 돌입이 맞을 텐데 이 경우에는 한사코 진입이라고 보도한다.돌입의 남발은 정확한 의미를 몰라 빚어지는 일이겠지만, 그보다는 강조를 위한 언어 인플레이션이라고 보는 게 마땅할 것 같다. 그냥 파업이나 공사를 시작했다, 착수했다(착수도 좋은 말은 아니지만)고 하면 싱거운가 보다. 어떤 일이 몰래 이루어진 경우에도 '비밀리에'보다는 '극비리에'라고 쓰는 식이다. 그래서 강수나 강경 대신 초강수, 초강경이 등장한다.
보도 종사자들이 맞춤법은 물론 적확한 단어 사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틀린 말, 어색한 말은 너무도 많다. 정도차가 있을 뿐 모든 매체가 비슷하다. 본인이 직접 남에게 물건이나 금품을 주는 경우에도 '전달했다'고 쓴다. '자문을 구한다'는 틀린 말인데도 매일같이 쓰이고 있다. 영업용 택시(자가용 택시도 있나?), 운전석 옆자리를 뜻하는 조수석이라는 말도 우습다. '가능한 한'이라고 해야 할 때 '가능한'이라고 쓴 사례가 많다. '혼자 집을 보던'이라는 1950년대식 표현도 여전하다(집을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떠내려 가나?). 음주운전 단속과 음주단속이 같을 리 없다. 가운뎃점의 사용방법도 자주 틀린다. 진·출입이라고 표기하면 진출과 진입이 아니라 진입과 출입이 돼 버린다. 충·남북도 충북 남북이 된다. 도로 확·포장과 같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확장과 포장의 장이라는 한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은 보도지침에 짓눌리던 5공화국 시절에 '관련'이라는 얼버무리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면서 이 말은 완전히 정착했다. 여섯 문장으로 된 기사에 관련이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오는 경우도 보았다. '이와 관련'이라는 말은 빼도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문장이 훨씬 간결해진다. 그런데 별로 좋지 않은 전통이 이어져 이제는 제목에서까지 '노 대통령 ○○○관련 질책'이라고 말하게 돼 버렸다.
제목은 광고와 경쟁하듯 갈수록 더 경박해지고 있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기사에 날개까지 달아 주는 제목이 많다. 신문윤리위원회가 최근, '선두 SK 성과급 富럽다'라거나 '카메라 3D게임 TV까지 多된다'하는 식의 억지 조어를 쓴 신문을 비공개 경고했지만, 이런 것들은 예를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여름장사가 잘 돼 즐거워하는 표정을 '夏夏夏'라고 표현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면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또 '많은 이용 있으시기 바란다'거나 '그는 긴 코를 갖고 있다'는 식의 be동사 have동사로 된 영어식 문장을 지적하면 시대에 뒤지는 일일까. 다른 표현을 궁리할 법한데도 회담이나 집회가 열리면 기자들은 한결같이 '가졌다'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은 언론의 교열기능이 약해지고 기사 출고과정의 점검도 부실해진 탓이다. 인터넷세대의 정통문법 경시나 언어파괴의 영향도 크다. 감각은 좋아졌지만 글쓰기와 말하기능력은 떨어졌다. 문제는, 언론이 그렇게 쓰면 일반인들도 따라서 쓰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에 글쓰기 말하기훈련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생각한다. 종사자의 구성이 신문보다 훨씬 다양한 방송은 특히 언어와 문자 모두 고쳐야 할 점이 많다. 컴퓨터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봐주지만, 적확하고 올바른 단어의 선택까지 도와주지는 못한다.
임 철 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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