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이상 제철산업의 꽃으로 불린 고로(용광로) 공정을 대체하는 혁명적인 기술이라 자부합니다."270만평에 달하는 경북 포항의 포스코 포항제철소 부지 모퉁이에 자리잡은 파이넥스(FINEX) 데모플랜트. 포스코가 환경보호와 원가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험대로 삼은 곳이다. 5월 29일 세계최초라는 자부심을 안고 시험가동에 들어간 파이넥스 데모플랜트는 기존의 고로 공정에서 소결(燒結·고체 가루를 틀속에 놓고 프레스로 눌러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과 코크스 과정을 생략, 원가와 공해를 줄일 수 있는 차세대 혁신 기술로 꼽힌다. 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160명의 산업 전사들은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던 지난 달 29일 상용화 시기를 당초 2005년 말에서 6개월 정도 앞당기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고로 프로세스는 가라
24시간 시뻘건 쇳물을 쏟아내는 용광로들이 모여 있는 제선 지역 끝 자락에 우뚝 선 120m 높이의 파이넥스 공장은 사방이 철제담장으로 둘러 쌓여 요새를 방불케했다. 이후근 조업기술그룹장은 "국내외 경쟁업체는 물론 포스코 일반 직원도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보안'을 강조한 뒤 언론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산 현장 대신 '예외'로 안내된 중앙운전실은 최첨단 디지털 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생산의 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키 위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파이넥스는 기존 고로 공정에서 사용하는 철광석과 석탄 덩어리 대신 가루(Fine)를 쓴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포스코 고유 브랜드. 고로 공정은 가루 철광석과 유연탄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단단한 덩어리로 만드는 소결 작업과 코크스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파이넥스는 가루상태에서 곧바로 쇳물을 만들어낸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좀더 값싸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생산하는 기술의 승리인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본 등 철강 선진국들도 1990년대 초부터 파이넥스 공정을 연구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며 "전세계 철강업계의 이목이 포스코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철강산업의 키워드도 환경
'깨끗한' 공정의 역사는 각국이 환경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비투자보다 공해방지시설 비용이 더 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시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일본의 디오스와 호주의 하이스멘트 등 세계적인 철강회사들이 환경 친화적인 공정 개발에 나섰다.
포스코도 1992년부터 오스트리아의 푀스트 알피네와 공동으로 파이넥스 공정을 연구, 11년 만에 쇳물 연산 60만t 규모로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모두 1,577억원이 투자됐는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소결작업과 코크스 과정을 거치지 않아 환경오염 물질인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 이산화탄소(CO껵) 배출량이 각각 고로 공정의 6%, 4%, 85%에 불과하다. 이후근 그룹장은 "포스코는 2000년 5월 75m높이의 환경센터에 오염물질 실시간 측정을 비롯한 환경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클린 이미지 정착에 힘을 쏟아 왔다"며 "파이넥스는 환경보호 노력의 결정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효과도 대단하다. 가격이 유연탄의 80% 수준인 가루석탄을 사용하는 등 쇳물제조 비용이 고로에 비해 85% 정도에 불과하다. 운영 인력도 고로의 70% 수준이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정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푀스트 알피네와 50%씩 나눠 가지고 있어 중국 등에 설비를 수출할 경우 로열티 수입도 짭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항=이종수기자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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