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를 쓴 작가 김 훈은 최근 나온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근로자의 생존 양식과 노동의 비애를 목메어 얘기한다. 과음 때문에 속 쓰린 아침에 '밥을 벌기 위해 밥을 힘들게 넘겼던' 경험이 있는 모든 직장인들은 그의 장탄식에 고개를 끄덕일 터이다."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에 앉아 낚싯대를 들고 앉아 있는 자가 바로 나다."
하지만 사회의 첫 출발을 '백수'로 시작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밥벌이의 고통을 호소하는 직장인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다.
청년 실업자들에게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가진 자의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해외 어학연수까지 하며 따낸 상위권의 토익 점수도 가는 곳 마다 100대 1이 넘는 경쟁률 앞에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입사원서 100여장을 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15∼29세 청년 실업자는 36만명. 구직을 단념한 청년은 8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26%나 늘어났다. 집에서 놀고 있는 비경제활동인구는 4명 중 1명 꼴이다. 청년 실업률만 7.4%로 전체 실업률(3.3%)의 두 배가 넘는다. 이쯤 되면 '대학졸업자=실업자'라는 농담이 더 이상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눈높이를 아무리 낮춰도 들어갈 곳 조차 없는 상황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며칠 전에는 일본에서 대학원을 나오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가 목숨을 끊는 일까지 일어났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호소하는 목소리 보다 밥벌이를 구하지 못해 외치는 절규가 더 큰 사회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취업난이 회복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 국내 139개 대기업의 채용계획은 5,700여명에 불과하다. 내년 2월 대졸예정자 30만 여명 중 겨우 2%만이 일자리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일자리가 이처럼 모자라게 된 일차적 원인이 고용을 꺼리는 기업에게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기업들만 윽박지를 수 있을까. 기업인들은 "경기 침체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도 투자를 늘리고 채용을 확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항변한다. 참여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복지와 분배를 지나치게 강조해 기업들의 성장 추진력을 약화시킨 것이 취업난의 한 원인이라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정부는 입만 열면 분배와 복지를 얘기하지만 일자리 제공보다 더 효과적인 복지정책은 없는 법이다. 선진국들이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제1목표로 삼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은 고용의 중요성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근로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것도 10%대가 넘는 실업률을 줄이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고육책의 하나였다.
청운의 뜻을 품고 사회로 나오는 젊은이들에게 일할 기회조차 주지 못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부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고용을 주요 국정지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도 자명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젊은이들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느낄 새도 없이 '삶의 지겨움'을 먼저 경험하고, 사회에 대한 증오를 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창 민 경제부 부장대우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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