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47)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 승리'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다. 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부속실장에 발탁된 그는 대통령의 업무 일정과 건강문제 등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챙겨왔다.부속실장의 자리는 대통령의 집무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대통령에게 바로 연결되는 '핫라인'이 아닌 한 통상적인 전화연락도 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YS 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가 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장학노씨도 바로 이 자리를 맡았었다.
노 대통령과는 2000년 12월 서갑원 의전비서관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2002년 3월 노 대통령의 보좌역이자 광주·전남지역 조직책으로 임명된 뒤 광주로 내려가 지역기반을 다졌다. 노 대통령에겐 황무지나 다름 없는 곳에서 1년 넘게 '노무현의 전도사' 역할을 하며 광주지역 교수·변호사 등의 '500인 지지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는 선거자금이 없어서 매일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노무현 맨'이었다. 경선 승리 이후 6개월간 노 후보의 의전팀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말 노 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떨어지자 "노풍(盧風)을 되살리겠다"며 다시 광주로 자원해서 내려가 선거운동을 주도했다.
양 실장은 나이 마흔이 넘어 늦깎이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전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딴 뒤 수년간 시간강사로 출강했지만 "큰 물에서 놀면 자리가 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96년 모 국회의원의 정책보좌관이 됐다.
그는 그동안 청와대 내의 관사에서 숙식하면서 본관의 사무실만 오가며 외부 출입을 삼가할 정도로 조심스런 행동을 보였다. 4월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임자인 김한정씨에게 '사람 조심하라', '절대 명함주지 말라'고 조언을 받았다"며 "앞으로 6개월 동안 바깥 출입을 안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결국 '인맥의 덫'에 빠지고 말았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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