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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자기결정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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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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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상의 발전과정에서 오랜 쟁점 중의 하나가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제간에 존재하는 긴장과 갈등이었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대표를 뽑아 주권자인 시민들의 권한을 일정기간 위임하는 대의제가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민주주의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흐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인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은 단지 민주주의 교육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장식물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면 실현하고 싶은 근본적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행정자치부가 내년부터 제한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주민투표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의 분권과 분산이 실제로 진행되는 경우, 가장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 갈등조정 메커니즘과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의 도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그것을 도입하는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거나 그것이 가져올 부정적인 효과에 대하여 많은 강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예컨대 국책사업 표류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든가, 주민투표가 지역이기주의를 심화시킬 뿐이라든가, 중우정치를 초래하고 지역갈등을 고조시킬 공산이 크다든가하는 우려이다. 그러나 현재 제안된 주민투표는 일단 국책사업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지역이기주의나 중우정치의 우려는 사실 주민투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 그 자체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현재의 주민투표법안에 따르면, 자치단체 고유 권한에 속하는 사안만을 투표대상으로 하고 있고, 투표형식은 찬반 또는 양자택일 형식만을 허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중요한 문제들은 자치단체간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타협과 조정의 과정 없이 무조건 주민투표로 넘겨 책임을 회피하거나 지역이기주의적 선동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의 문제도 중요하다. 주민투표를 내세워 다수의 소수에 대한 지배의 합리화가 나타날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를 해야 할 사안을 뚜렷하게 정하고, 또한 투표 범위의 결정에서 당사자나 소수자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보면 소지역주의에 기인하는 지역간 경쟁이 과도하게 분출되므로 이를 완화할 장치와 함께, 투표전 토론이나 공청회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원칙적으로 주민투표제는 민주주의의 질을 심화시키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주민투표제와 함께 또 하나의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주민소환제이다. 우리는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지방정부의 수장이나 자치단체장이 비리로 구속되어 업무가 마비되었음에도 정작 주민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나 이런 주민의 '선거후 무력함'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분위기도 우리 주변에서 감지되고 있다. 광주의 한 자치구에서는 '공직사회개혁과 부패척결'을 내세운 한 시민단체가 부인의 인사청탁비리로 구속된 자치단체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투표를 실시하여 압도적 찬성을 이끌어냈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삶이나 집단 생활에서 자기결정의 원리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내용이 풍부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동원에서 참여로, 형식적 참여에서 실질적 주체로 거듭 나려는 시민적 욕구가 확실히 커지고 있다. 사실 주민투표제와 주민소환제는 단기적인 정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단계 진전을 위한 필연적 제도로 보아야 한다.

현실적 여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주민투표제가 실시되고 나아가 정치개혁의 맥락에서 제한적이나마 주민소환제를 도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행정부나 국회 정치개혁 특위가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정 근 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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