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컬투 / "뒤집어져도 책임 못져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컬투 / "뒤집어져도 책임 못져요"

입력
2003.07.31 00:00
0 0

요즘 서울 대학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을 들라면 단연 '컬투 쇼'가 꼽힌다. '컬투'는 '극장식 개그 공연'의 새 장을 연 '컬트 삼총사'가 지난해 말 해체된 뒤 정찬우(35), 김태균(31)이 새로 결성한 개그 듀오. 이미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 SBS 러브FM '컬투의 2시 탈출' 등 방송을 통해 이름을 알렸지만, 고향이나 다름없는 대학로에서 '컬투' 간판을 걸고 연 첫 공연이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도 크다.전용극장 컬트홀(www.cult2.com)에서 16일 개막한 공연에는 매회 평균 200여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말이면 240여석의 객석이 모자라 통로 계단에까지 관객들이 빼곡이 찬다. 극심한 불황 탓에 '컬트 삼총사' 시절 이어온 전회 매진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톱 가수들의 공연도 절반이 차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대성황이라고 할 수 있어 9월7일 폐막할 때까지 꾸준한 인기를 점치게 한다.

관객들, 온 몸으로 웃었다

"오늘 공연은 관객 중 연인 한 쌍의 키스 쇼로 막을 올리겠습니다. 가운데 열 20번. 자, 일어나서 정열의 키스 쇼를 보여주세요."(정찬우) "아니, 뽀뽀는 안되죠. 10초 동안입니다. 안 하면 공연 그냥 끝냅니다. 우리야 돈 받았겠다, 불안한 건 당신들이죠."(김태균)

지목된 연인 커플은 느닷없는 주문에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진한 키스 신을 연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신세대 마술사 이은결에게 배웠다는, 붉은 손수건이 순식간에 여성 삼각팬티로 변하는 마술 쇼, 김형중의 '그랬나봐', 휘성의 '안되나요', 더 자두의 '김밥' 등 최신 유행곡의 뽕짝 버전 메들리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이어지지만, 컬투 공연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관객의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까지 잡아내 개그의 소재로 삼는 즉석 애드립.

이런 식이다. 잔뜩 폼 잡고 열창하던 정찬우의 시선이 잠시 밖에 나갔다 온 한 남자 관객을 쫓아 움직이더니 남자가 자리에 앉자 노래를 멈추고 노려본다. 공연 시작에 앞서 들은 공지사항을 기억해 낸 관객들은 순간 뒤집어진다. "공연 도중 볼 일 있으신 분은 조용히 다녀오시면 됩니다. 단, 3분을 넘기면 '똥돌이' '똥순이'로 간주합니다."

2시간30분 동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컬투의 화려한 입담에 배꼽을 쥐고 웃다 보면, 인터넷에 '공연 전에 미리 배를 채워두라'는 관람 수칙을 왜 띄워놓았는지 실감하게 된다.

한 열성 팬은 "컬투의 마력에 홀려" 벌써 두 번째 공연장을 찾았다고 했다. "컬트 삼총사 시절에도 그랬지만 공연 보고 나면 일주일이 마냥 즐거워요. 웃음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말이 실감나지요. 그래서 중독 환자가 많은가 봐요. 두세 번 더 볼 거예요."

컬트개그 대학로 습격 사건

군대 시절 각각 문선대와 예술단 멤버로 활약하며 스스로도 몰랐던 '끼'를 발견하게 됐다는 정찬우와 김태균은 1995년 MBC 개그맨 공채 5기로 만났다. 역시 동기인 정성한과 셋이서 한 코너에 출연하면서 '컬트 삼총사'를 결성했다. 제법 이름이 알려지고 서서히 인기도 높아질 무렵 이들은 TV를 박차고 거리로 나서는 모험을 감행했다. "우리의 강점은 자유분방한 입담이었는데, 당시는 콩트식 코미디가 주류여서 적응하기 힘들었어요."(정찬우) "이홍렬 선배가 '너희 개그는 5,6년 후에나 먹힐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김태균)

이들은 셋이서 돌아가며 따발총 쏘는 언어유희를 이어가는 스탠딩 개그에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 관객과 함께 하는 즉석 퍼포먼스 따위를 엮어 '개그 콘서트'란 간판을 내걸고 지방대학 축제, 마을잔치 등을 찾아 방방 곡곡을 돌며 무료 공연을 펼쳤다.

TV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살아있는 개그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그렇게 입소문이 난 덕에 대학로에 둥지를 틀자마자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 이들의 성공은 대학로에 '개그 콘서트' 붐을 몰고 왔고, 그 중 한 팀이 TV에 진출한 것이 KBS 2TV의 '개그콘서트'다.

"방송 앞두고 '개그콘서트'란 이름을 써도 괜찮겠느냐고 묻길래 선심 쓰듯 허락했죠. 솔직히 얕잡아본 건데 예상외로 성공해서 배가 좀 아팠죠. TV에서 '개그콘서트'를 만든 것처럼 말할 때는 화가 나지만, TV 코미디의 정형화된 틀이 깨진 것은 반갑습니다."(정찬우) "얼떨결에 '개그콘서트'란 이름을 빼앗긴 건 지금도 아쉬워요. 하지만 그 덕에 '컬트삼총사'와 '콘서트'를 조합한 '컬서트', 개그에 미쳐보자는 뜻을 담은 '미친 콘서트'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용도 업그레이드해 나갈 수 있었죠. 결과적으로 자극제가 된 셈이죠."(김태균)

컬투가 TV에 돌아온 까닭은?

속담의 숨은 뜻(물론 믿거나 말거나!)을 흥미롭게 풀어보는 '짠짠속담', 우리 말을 일본어 비슷하게 들리게 한 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고 우겨대는 '장하다! 한국말', 옥희 역을 맡은 김태균의 목소리 연기가 압권인 '라디오 극장―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컬투가 '웃찾사'에서 선보인 메뉴는 한결같이 간판 코너로 자리잡았다. 특유의 입심 덕에 '컬투의 2시 탈출'도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러브 콜을 받고도 한사코 고개를 젓던 이들이 TV에 돌아오고, 라디오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똥고집을 버린 거죠. '컬투'로 새 출발한 것도 널리 알려야겠고." 장난기 섞인 대답 뒤에 자못 진지한 말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안 맞으면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법을 알게 됐지요. 한 솥밥 먹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99년 연예기획사를 차린 이들은 '딱딱이' 김주현, '18세 트로트 보이' 김태환 등 신인 개그맨 14명을 발굴해 키우고 있다.

어렵게 방송에 다시 발을 디딘 이들은 내친 김에 큰 야심도 가져 본다. "'컬투의 개그레터' '컬투의 개그 프로포즈' 식으로 우리 이름을 걸고, 개그맨들이 초대 손님으로 나오는 토크 쇼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하게만 해주면 정말 멋지게 꾸밀 수 있을텐데…."

컬투의 개그, 개그철학

컬투는 인터뷰 내내 "우리 냄새가 나는 개그"라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 냄새라?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개그, 관객과 호흡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개그를 말해요."

이들은 이런 나름의 개그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꽉 짜여진 대본을 쓰지 않는다. 미리 짜여진 대본에만 의존하면 관객들에게 우격다짐으로 웃음을 강요하는 우를 범할 수 있고, 말이나 행동이 자꾸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음담패설이나 엽기, 무의미한 유행어 남발 등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두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당장 웃음을 끌어내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관객들이 돌아서면 저질이라고 욕한다"며 "무리하게 웃음의 강도를 높이기보다는 작지만 편안하고 개운한 웃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실례를 들어보자. 공연 도중 김태균은 반바지가 너무 달라붙어 자꾸 엉덩이에 끼이자 연신 바지를 잡아 내렸다. 야한 농담이 튀어나올 법한 상황. 그러나 이들은 엉뚱한 말로 폭소를 자아냈다. "(뱃속의 장을 가리키며) 이 녀석이 섬유질을 워낙 좋아해서…."

컬투의 꿈, 그리고 야망

"꿈이요? 죽을 때까지, 아니 관객이 사랑해줄 때까지 무대에 서는 거죠."

이들의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컬트홀이 자리잡은 거리를 통째로 사들여 '컬트의 거리'를 만들고 싶단다. "티켓 하나로 공연을 관람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시고 가벼운 게임도 즐기고…. 외국여행 하다 보면 어느 도시든 꼭 가봐야 할 거리가 있잖아요. 서울의 명소 '컬트 스트리트'.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아요?"

그 꿈이 언제쯤 실현될진 알 수 없지만 그런 멋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