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표한 호남고속철 노선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호남고속철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정부의 노선도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첫째, 왜 서울 강남에 새로운 출발역을 만드는가. 강남 지역은 영남에 비해 호남 출신 주민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고속철이라는 이름으로 강남 지역에 역을 신설하는 것은 양두구육(洋頭狗肉)격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안은 호남고속철이 아니라 수서를 출발, 향남(화성시)을 오가는 40㎞의 '수서지선' 건설이다. 향후 영동고속철 건설, 한반도 통일이후의 상황 등을 감안해야 하는 마당에, 경부·호남고속철 종점 두 곳에 출발점이 네 곳(서울, 용산, 광명, 수서)이라니 어이가 없다. 고속철은 정거장이 극히 제한되어야 하며, 그래야 제 속도가 나온다.
아마도 경부고속철의 기점이 광명이라는 사실이 강남 관계자들과 주민을 자극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부고속철 기점이 광명으로 정해진 것은 차량기지가 들어설 토지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었다. 호남고속철의 수서 노선은 보상비나 건설기간의 교통 혼잡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경제적으로나 교통사정으로 볼 때 강남에 막대한 사회간접자본을 쏟아 붓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공항과 연결되는 삼성동의 도심터미널과 같은 방식의 운영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둘째, 명색이 호남고속철이라면서 과연 호남의 어디를 지나가는가. 호남고속철이라면 호남의 거점도시인 전주, 광주를 경유해야 마땅한데도 정작 고속철은 익산까지만 건설되고 그 이하는 기존의 호남선을 이용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호남고속철에 호남이 없는 것이다.
경부고속철의 경우 정부는 기존의 경부선과는 별도로 대전, 대구, 부산의 주민수송을 위해 건설한다고 밝혔다. 고속철을 신설하는 이상, 주요 광역시 및 지자체의 수도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이 왜 전주, 광주에는 적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이는 정부가 지역차별이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얼마 전 전북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는 호남고속철의 전북지역 역을 익산에 두느냐, 전주에 두느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대세는 익산이었고 전주는 소수의견이었다. 고속철이 지나갈 전북 지역에서조차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익산을 주장하면 실질적인 호남고속철은 이루어질 수 없다. 눈가림용 지선 연결이 되고 만다.
셋째, 분지점은 또 어떤가. 분지점은 호남지역 주민들이 고속철을 이용해 신행정수도, 대전, 천안, 오송 등에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 맞춰져야 한다. 혹자는 호남고속철 경로 상에 행정수도역을 세울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점, 즉 부산·대구 방향으로의 접근에 어려움을 야기한다. 분지점 문제는 비단 충청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충청권이 분지점 문제를 놓고 다투는 와중에 정작 전주, 광주는 논의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호남고속철은 이름 뿐이다. 이대로 건설한다면 '수서지선'과 '충남지선'에 불과한 노선이 된다. 명실상부한 호남고속철은 대전과 전남·북의 수도인 전주와 광주를 연결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나 호남 주민을 위해서나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수서지선 40㎞ 건설비는 대전―전주의 60㎞를 건설하고도 남는다.
김 국 서경대 물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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