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1월 나는 살롱 도톤의 회원이 됐다. 살롱 도톤은 1903년 르동, 루오, 피카소 등 당시 프랑스의 혁신적 작가들을 중심으로 입체파 등의 운동을 전개, 현대 회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단체이다. 살롱 도톤과 경쟁 관계에 있는 살롱 드메는 프랑스 전통 청년화가전의 후신으로 1943년에 신설돼 전위적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내가 살롱 도톤 회원이 된 것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다만 살롱전 출품 3년 만에 회원이 된 것은 하나의 기록이었다. 파리화단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일본인 오기스 다카노리는 자기가 7년 만에 회원이 됐다며 내가 3년 만에 회원이 된 데 크게 놀라워 했다. 회원 선출은 1차로 입선작을 놓고 심사위원들이 회원 후보작을 결정한 후에 작품 밑에 표시를 해놓으면 전체 회원이 투표, 과반수 득표로서 결정된다.
사실 나는 55년 파리에 도착했을 때부터 살롱 도톤의 회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그런 미술단체 회원이 되어야 파리화단에서 자리잡는 데 수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해에 바로 살롱 도톤전에 출품했고 각종 국제전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56년에 열린 국제전에서도 나는 40호 크기의 여인상 '백일(白日)'을 내놓았다. 나는 이 작품이 아주 선세이셔널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막상 전시장에서 바라본 내 작품은 촌스럽고 초라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있던 나는 미술학도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내가 현대미술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된 것은 이때 입체파 공부를 하고 난 다음이었다. 화면을 분할하고, 그 면과 또 다른 면을 다른 색조로 메워가며 서로를 조화시켜야 하고 나아가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57년 여름 라라뱅시 화랑에서 내 작품을 보고 개인전을 하자는 요청이 왔다.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이었다. 라라뱅시 화랑은 규모는 작았지만 꽤나 권위가 있었다. 당시 나는 25점을 내놓았고 3점이 팔렸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열린 살롱 도톤 회원전에 '컴퍼지션'을 출품, 회원으로 뽑힌 것이다. 그때 살롱 도톤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5,000여 점에 이르렀고 이 중 270점을 입선작으로 뽑았다. 예년에 400점 내외를 선정한 데 비하면 훨씬 더 경쟁률이 높았다. 그때 동양인으로 회원이 된 사람은 일본인 11명과 나 뿐이었다.
이런 사실이 당시 AFP통신을 통해 대만에서 발간되는 '차이나 메일'이라는 신문에 실렸다. 한국의 화가 김흥수가 살롱 도톤의 회원이 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이승만 대통령이 듣고 파리의 김용식 공사에게 편지를 보내 "파리에서는 화가들이 성공하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화가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 국가적으로 도와 주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사실 나는 전에도 이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반도호텔의 벽화 '한국의 봄'이 완성돼 호텔에서 개관 낙성식이 열리는 때였다. 당시 공사 책임자였던 모 공병 대위가 나에게 그날 그림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작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대통령의 권위를 빌어서 출세한 것처럼 보이기 싫었고 또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하자는 것이 신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공병 대위는 "이 바보 같은 사람아, 이 대통령께서 벽화 그린 사람이 누구냐고 찾으셨어"라며 아쉬워했다. 만약 그때 내가 이 대통령의 안내를 맡았다면 송금이 끊겨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도움을 청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어쨌든 운 좋게도 내가 진정서를 보내고 1주일도 안돼 공관장 운전사가 헐떡거리며 9층에 있는 내 집으로 달려 올라왔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지금 차 안에서 김 공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친서가 왔으니 빨리 내려오시랍니다"고 했다. 차에 타보니 김용식 공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제 김 선생 문제는 해결됐습니다'며 대통령이 보낸 친서를 보여주었다. 김 공사는 며칠 전과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송금도 즉시 받을 수 있었다. 송금이 끊겨 걱정하던 차에 그림이 팔렸고, 또 살롱 도톤의 회원이 되면서 송금도 이뤄졌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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