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 장밋빛 미래를 100% 담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언어와 문화의 차이 등 각종 외적 요인과 외로움 같은 내적인 동요까지 겹쳐 성공한 유학생보다 실패한 경우가 더 많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 현지 유학생들의 그늘은 매우 깊었다.목표없는 유학은 실패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타운인 애넌데일에서 어렵게 만난 이모(22·여)씨는 또래의 발랄함은 찾아보기 힘든 초췌한 모습이었다. "1년째 우울증 치료 약을 복용하고 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신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맏딸인 이씨는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직후인 지난 해 5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그러나 '영어를 익히고 적응기를 가진 뒤 정규 학사과정에 편입하겠다'는 미국행 기내에서의 굳은 다짐은 한달을 넘기지 못했다.
월 1,500달러짜리 하숙집에서 생활하면서 집 근처 조지메이슨대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등록했으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 친구를 만난 게 불행의 출발이었다. 학교에 가기보다는 한인타운 술집과 PC방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영어공부와는 자연 담을 쌓다시피했고, 집에서 보내주는 월 250만원의 생활비는 보름을 넘기지 못했다.
만난 지 6개월만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씨는 불면증과 우울증에 빠졌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만 이대로 갔다가는 '더 큰 일'이 생길 것 같아 주저하고 있다"는 이씨는 "유학생활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후회 뿐"이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러기 엄마의 '한계'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에 살고 있는 기러기 엄마 정모(41)씨는 7학년(중학교 1년)인 아들(13) 얼굴만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씨는 1999년 여름 미국 땅을 밟았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려는 남편을 따라 남매와 동행했다. 3년 뒤인 지난해 남편은 박사학위를 땄고, 평소의 바람대로 한국의 대학 전임강사로 초빙됐으나 고민이 생겼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이던 남매 학교문제 때문이었다. 며칠간의 논의 끝에 "2∼3년 더 체류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남편 혼자 한국에 돌아갔다.
아버지의 '공백'이 너무 컸던 탓일까. 모범생이었던 아들의 행동이 돌변했다. 담배를 입에 대고 툭하면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외국인 친구를 때려 정씨가 학교와 부모를 찾아가 사과하는 일까지 잦아졌다. 아들의 지도교사는 "사춘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일정을 크게 앞당겨 8월 중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인 정씨는 "주위에는 비슷한 처지의 한국 가족이 많지만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게 공통된 고민"이라고 말했다.
중2∼고1이 가장 취약
한국 유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조지메이슨대에서 매스컴을 전공하고 있는 노정민(26·3년)씨는 "중학교 2학년부터 고교 1학년 사이 조기유학생들이 유학생활 적응에 가장 취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건국대 재학 중 도미, 3년째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노씨는 조기유학생의 증가로 숱한 부작용이 보편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학생 혼자 하숙집이나 친척집에 거주하는 비율이 늘다 보니 탈선도 이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노던버지니아커뮤니티대에 다니는 조계향(24·여)씨는 "사춘기 연령에 유학 온 학생들의 최대 문제는 정신적 공황"이라며 "부모 역할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모가 곁에 없다 보니 술과 담배에 손을 대고 심지어 마약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뉴욕 플러싱 A식당 앞은 늦은 밤 시간 마리화나 등을 피우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지난 달에는 유학 온 지 6개월 된 고교 1학년 한인 여학생이 보름 가량 하숙집에서 나오지 않아 병원에 실려간 뒤 정신 이상으로 진단 받고 치료중이다.
뉴욕 한인교사회 방욱혜(사우스쇼어고 수학교사) 회장은 "증가하는 유학생수 만큼 '문제 유학생'도 늘고 있다"며 "한국에서 공부를 괜찮게 하고 행동이 반듯했던 유학생이 미국 생활에도 잘 적응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뉴욕=김진각기자 kimjg@hk.co.kr
● 텍사스유학 조성래 대표
"조기유학을 고려한다면 사전에 현지 여름캠프에 참가하세요."
최근 조기유학생들이 부쩍 많이 몰리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텍사스 유학'을 운영하고 있는 조성래(41·사진·www.texasuhak.com)씨는 '선(先) 여름캠프 참여, 후(後) 유학'이 조기유학의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는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조기유학에 앞서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의 여름캠프에 사전 답사식으로 참여하면 해당 학교의 교육 환경을 파악할 수 있고, 미국 중·상류 가정의 학생들과 어울려 단기간 집중적인 영어공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달 하순부터 미국 초·중학교가 3주간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여름 캠프는 학부모 사이에서는 '일생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간'이란 인식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조 원장은 "하이드팍 초등학교 등 여름 캠프를 운영하는 오스틴 지역 초등학교 중 일부가 방학 기간 인터뷰와 발표연습 등 통합 교과서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학교들은 정규 수업과정에서도 똑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조기유학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측에서 직접 운영하는 여름캠프는 조기유학 이전 단계 성격 외에도 살아있는 영어 습득과 기본적인 문화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게 조 원장의 설명. "한국 학생과 미국 학생이 1대 1로 짝을 맺어 함께 활동하거나 미국인 개인 교사가 수시로 생활영어를 가르쳐주고 발음 교정도 해 줘 단기 연수코스로는 적격"이라는 것이다.
학부모가 학생을 동반한 경우라면 교과목 강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필 것을 권했다. 조 원장은 "가령 영어의 경우 개별적 강의가 아닌 사회, 과학과 같은 다양한 내용을 통합적으로 가르치며, 이 때문에 어휘 및 문법 등을 총체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스틴=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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