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7월29일 국제연합의 제2대 사무총장을 지낸 다그 함마셸드가 스웨덴 남부 베테른호(湖) 부근의 옌셰핑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무총장 재직 중인 1961년, 콩고의 반정부군 지도자 촘베를 만나 그 나라 내전의 종결 방안을 의논하기 위해 북로디지아(지금의 잠비아)의 은돌라로 가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그 해 12월 노르웨이 국회는 함마셸드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함마셸드의 고향 옌셰핑은 성냥 공업으로 유명하다. 스웨덴은 세계 최대의 성냥 생산국으로 전세계 성냥의 1/3을 공급하고 있는데, 스웨덴 성냥 생산의 70%를 감당하고 있는 도시가 옌셰핑이다.함마셸드는 스톡홀름 대학교 경제학 교수를 거쳐 스웨덴 외무부에서 일하다가, 1953년 노르웨이 출신의 트리그베 리에 이어 국제연합의 제2대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는 두 차례의 임기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편, 국제연합 사무국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애썼다. 그가 취임할 무렵 미국은 매카시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었는데, 함마셸드는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사무국의 몇몇 '의심스러운' 직원들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요구를 단호히 뿌리쳤다. 국제연합의 재정을 미국이 거의 도맡아 지탱하던 그 시절에 사무총장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뒤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 오스트리아 출신의 쿠르트 발트하임, 페루 출신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쿠에야르, 이집트 출신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이 차례로 국제연합의 살림을 맡았다.
함마셸드의 격언 한 마디. "삶은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을 요구한다. 그러니 우리가 세울 수 있는 위업은 도망가지 않는 것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