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날로 허리 둘레가 두꺼워지는 나는 여름이 되면 슬며시 투시 카메라가 생각난다. 수 년 전 여름, 갑자기 여러 방송과 신문들이 투시 카메라가 판매된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일제히 하기 시작했다. 투시 카메라로 찍으면 사람들의 알몸을 훤히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스포츠 신문들에는 투시 카메라를 판다는 광고도 여럿 나왔고 그 해 여름에는 투시 카메라로 볼 수 없는 특수 수영복이 대대적으로 판매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요새 여름에는 투시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일까?지금은 모두 잊었지만 1999년에는 난데 없이 Y2K의 공포가 전세계를 뒤덮었다. 모든 컴퓨터를 2000년 이전에 고치지 않으면 전세계에서 비행기와 자동차가 서고 은행이 마비되는 등 온통 엉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그 해 세계에서 많은 정부와 회사들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와 국회에서는 자국 정부가 Y2K 준비를 소홀히 한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국가에서조차 Y2K로 인한 사고는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
5공화국 때는 느닷없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는 평화의 댐을 만든다면서 국민들의 소중한 돈을 모았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전문가들이 북한의 수공위협은 정치적 조작이며 그런 걱정은 전혀 없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우리는 그 때 유명한 분들이 TV나 잡지에 나와서 금강산댐의 위험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감명 깊게 들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다시 금강산댐이 매우 위험하다며 방치하였던 평화의 댐을 대대적으로 보강하는 공사를 한단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가 맞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혼자서 앞으로 1년 안에 휴거(세상의 종말)가 온다고 믿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엄청난 비용과 공공 기관에 대한 신뢰가 걸려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정부와 언론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만약 어느 누군가가 고의로 잘못된 주장을 유포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다음에 평화의 댐 같은 이유로 정부가 성금을 걷을 때는 그러한 위험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나중에라도 국민들에게 거둔 돈에 듬뿍 이자를 얹어서 돌려줄 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우리는 매년 여름마다 투시되지 않는 수영복을 얼마나 더 사야 사실이 밝혀지는 것일까?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교수·미국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