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400년경(4∼6C 추정), 서라벌 김씨 왕가에 초상이 났다. 칼을 찼으니 남자일 테고 정강이뼈로 보아 신장 160㎝가 넘는, 당시로는 꽤나 기골(奇骨)을 갖춘 아까운 사람이었을 법하다. 장례를 지휘했을 살아 있는 왕족과 당대의 노구(勞軀)들은, 엄숙하고 보수적인 절차에 따라 죽은 자의 왕국을 건설했고, 그의 영생을 풍요롭게 해 줄 문명을 함께 묻었다. 거기에 천마도가 있었다. 속된 인간이 만든 비정한 역사가 그렇듯이, 후세는 그의 죽음보다 그가 누린 문명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경주 황남동 대릉원 끄트머리의 155호 고분은 사람의 무덤이되 천마의 무덤, 천마총으로 불린다. 1,000년 세월이 흐르고, 고려 왕건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신라를 '접수'한 뒤 그 경사스러움을 일러 하사했다는 '경주(慶州)'라는 이름으로 또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윤회의 염불이 서라벌 넘어 경주로 이어졌지만 무덤 주인은 부활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마는 부활했다. 썩지 않는 자작나무 껍질 속 모진 평면의 세월을 뚫고, 천의(天衣)를 두르고, 가슴 근육 욱실거리며 입체의 공간을 날아, 천년고도의 땅에 부활했다. 그래서일까. 가랑비 내리는 황룡사터도 생각만큼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비는 22일 밤새 내렸고, 그 비에 문명의 때를 씻은 경주의 이름없는 무수한 능과 돌들은 예쁘게 분단장한 고로(古老)의 단아함으로 햇살아래 서 있었다.23일, 경주는 살포시 들떠 있었다.
부활한 천마가 날아드는 곳
3회째를 맞는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8.13∼10.23)는 올해 테마를 '천마의 꿈'으로 달았다. 경주토박이 이홍렬(38)씨 말마따나 되는 것만 믿는 우리네 시각으로, 믿는 것이 곧 되는 것이던 그 시대의 생각을 알 길이 없지만, 보문단지 하늘을 날 천마의 꿈은 분명하고 또 단호했다. 이필동 행사 기획실장은 "21세기는 지난 과학·실증의 세기가 남긴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꿈과 감성의 세기"라며 "새로운 문화의 세기를 여는 열쇠를 신화라고 한다면 경주의 지역성과 신라의 시대성을 살려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신화의 메타포가 천마"라고 말했다.
1년 여 간의 기획·준비를 거쳐 형태를 갖춰 온, 보문단지 내 16만 여 평의 엑스포 행사장은 막바지 단장으로 부산했다. 50여 개의 주제관과 전시실 공연장 마다 당대 최고의 목수와 장인들이 맡고 서서, 흥성했을 왕경(王京)의 그 시절처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애니메이션화 하는데 전문가들이 이틀을 매달렸고(4D 주제영상 기파랑전), 서라벌 저자의 땀내를 재현하느라 오래된 목수들의 손가락은 부르터 있었다(난장트기). 신라의 자유부인 '미실'의 이름을 딴 성문화예술전(미실방) 준비도 한창이었다. 한 자리에 선사이래 육대주의 성(性)을 뭉쳐 놓으면 얼마나 흥감스런 교성들이 터져 나올까. 상상 끝에 넌지시 묻자, 미로처럼 꾸며진 '19세이상 관람관'도 있고, '성문화체험전'도 있다는 귀띔이다.
신라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딴 기획전시실 솔거방, 주제영상이 상영될 '에밀레 극장' 등은 그 이름에 걸 맞는 예술과 과학으로 치장되고 있었고, 아이들의 공간인 '천마의 궁전'은 미술학도들의 손을 통해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재현되고 있었다. 조직위 유흥렬 사무총장은 "1,000년 뒤 사람들이 손으로 더듬어볼 마음이 들게 하자는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행사장을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이 주최, 도시가 행사장
이번 행사가 지난 1, 2회와 다른 점은 엑스포의 형식과 내용보다 시민들의 열의에서 두드러진다. 누구는 첫 회 때 '그기 뭔데'식이던 시민들의 마음이 2회 땐 '또 하는 갑다' 였다고 했다. 한 켠에서는 "장인 장모 모셔와야 되고 조카 대동한 친지들 구경시키느라 돈과 시간만 빼앗겨서 경주사람이 못살 지경이더라"는 말도 했다. 행사장에 사람이 몰려 시내 경기는 오히려 죽더라는 푸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부터는 그 마음이 '그래도 그기 아이다'로 바뀌어 있었다.
1,2회 행사가 경북도와 경주시, 조직위원회의 행사였다면 3회 행사는 시민들이 함께 준비하고 치르는 행사다. '문화엑스포를 사랑하는 모임(문사모)'이 꾸려졌고, 최근에는 6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엑스포 참여시민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공식·비공식 절차를 통해 행사에 관여하고 있다. 협의회 김상태 사무총장은 "이왕 하는 거 경주도 살고 행사도 살도록 하자는 마음이 뭉친 것"이라고 말했다.
3회 엑스포의 무대는 경주시 전역이다. 조직위와 경주시는 지난 달부터 '남산문화유적답사' 프로그램을 통해 흥을 돋우고 있고, 경주지방자치개혁센터는 '자전거문화유적체험투어'를 시작했다. 경주문화원과 지방자치개혁센터는 각각 달빛역사기행, 즉 매달 보름달 뜨는 주말 저녁마다 포석정 재매정 월정교 첨성대 감은사 등을 차례로 돌며 차 마시고 이야기 듣고, 음악을 듣는 행사를 마련했다. 위덕대 신라학연구소는 행사 기간 중 '설화의 현장따라 경주기행' 프로그램을 선봬 참가자들의 혼을 빼놓겠다고 벼르는 중이었다. 지역 YMCA 등 시민단체들도 시내 곳곳에서 숱한 문화행사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유례없는 시민들의 열의는 엑스포 성공을 지향하고 있고, 그 응축된 힘이 행사의 공간을 도시 전역으로 확산시킨 것이다. 논 한가운데 선 이름없는 석탑에도 피가 돌고 남산 후미진 곳 와불도 홍조 띤 얼굴로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을 지 모른다.
/경주=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 이필동 기획책임자
"우리 행사는 '한정식' 입니다."
욕심 많은 행사 기획책임자 이필동(사진) 실장은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한계를 한정식에 비유했다. 뻑적지근한 한 상 받아 먹고도 '니 뭐 묵었노?' 물으면 '몰라, 점심묵었다' 하듯이 뭔가를 먹긴 했는데 딱 꼬집어 댈만한 메인디쉬가 없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것이 '컵을 두고 양동이로 물을 들이부은 탓'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진 일의 성취에 대한 스스로의 신랄함은, 행사에 대한 욕심 혹은 1만 여 명의 스탭들과 함께 이룬 것에 대한 자부의 역설로 들렸다.
그는 경주를 과거 천년을 깔고 앉아 미래 천년을 내다볼 수 있는 귀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장 추상적이고 황당한 '문화'라는 내용을, 가장 구체적이고 엄정한 '엑스포'라는 틀에 넣을 수 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행사 총괄책임자인 조직위 유흥렬 사무총장은 "엑스포행사장을 상설 테마파크화 하고, 4회 이후의 행사부터는 내용을 철저히 특화할 구상"이라며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이 실장은 "두꺼운 돋보기를 들이대 종이가 호로록 타도록 해야 하는데, 맨 유리 들고 하루 종일 있어봐야 미지근 해지지도 않는 것 아니냐"는 말로 살을 붙였다. 이들의 치열함과 수많은 장인·시민들의 정성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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