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판문점을 떠난다고 한다. 한미 양국은 7월23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동맹 정책구상3차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미군이 맡고 있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경비책임을 2005년 초까지 한국군에 넘기고 용산기지는 2006년 말까지 한국에 반환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북한 특수부대의 해상침투 저지 등 그 동안 한국이 넘겨 받기를 꺼렸던 임무들도 한국으로 이양된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지난 6월 2차 회의에서 합의한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지만, 미국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우려감을 떨칠 수 없다.2사단 재배치 계획은 한강이북 30여개 기지에 산재한 병력을 오산-평택권과 대구-부산권에 마련될 2개의 통합거점으로 이전한다는 것이 골자인데, 이로 인해 다양한 해석들이 촉발된 바 있다. 물론 미국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걱정할 게 없다. 2사단을 북한군의 장거리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북한군 남침시 재반격용 군사력을 보호하게 되어 대북 억제력을 오히려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것이 2년 전부터 추진해온 '군사변혁'의 일환일 뿐 최근 한국의 반미운동과는 무관하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140만명이라는 한정된 병력으로 세계를 커버해야 하고 전상자 발생을 최소화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군사력의 첨단화·기동화와 함께 재배치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위협에 근거한(threat-based) 군사력을 능력에 근거한(capability-based) 군사력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해왔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위협을 대상으로 하는 정적(靜的)인 군사력 배치를 지양하고 세계 어디서든 위협이 부상하면 신속하게 대응 군사력을 편성하는 동적(動的)인 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다른 해석들이 혼재한다. 보수적 인사들은 2사단의 후방배치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병력감축이 대한 방위공약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진방어'에서 '보복응징'으로의 역할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국의 즉각 개입 명분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반미정서와 미국에서의 반한감정 확산을 염두에 둔 우려이다.
그런가 하면, 개혁적 인사들은 미국이 자유롭게 북한을 공격할 채비를 차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우려감을 나타낸다. 이것이 그 동안 반미운동을 주도하고 주한미군 철수론을 주장해왔던 이들이 정작 미국이 병력 재배치를 서두르자 '재배치 반대'로 선회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해석들이 사실이라면 미군 재배치는 남북한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양날의 칼'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우려들을 말끔히 불식시킬 수 있는 관건은 역시 한미간 신뢰이다. 양국간 신뢰가 공고하고 미국의 의도 또한 동맹을 강화하는데 있다면 크게 우려할 것이 없다. 미국이 한국과 충분한 협의 없이 대북 군사행동을 감행할 리도 만무하며, 어떤 경우에도 한국을 보호할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이다. 우선은 미국으로 하여금 미군 재배치나 역할 재조정을 서두르게 한 원인이 무엇이며 무분별한 반미운동이나 성급한 '동등한 한미관계' 추구가 초래한 손실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국방비 부담이나 안보태세 약화 가능성 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자주국방 시대가 열린다며 기뻐하는 철부지 같은 생각은 곤란하다.
이와 함께 새로운 현실에 차분히 대비하는 자세도 불가피하다. 2사단이 재배치되고 미군이 판문점을 떠나는 것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싫든 좋든 그것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김 태 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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