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7월26일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 조지 호레이스 갤럽이 스위스 베른 근교의 별장에서 작고했다. 향년 83세. 아이오와주 제퍼슨에서 태어난 갤럽은 아이오와 주립대학 재학 시절 광고회사에 비상근으로 일하며 독자들의 신문 선호도 조사를 거들다가 자신의 라이프워크를 발견했다. 그는 주먹구구식으로 조사지를 배포해 수집하던 그 시절의 '스트로폴(straw poll)' 방식과는 다른 좀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조사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했고, 그 고심 끝에 적절한 표본 추출, 정확한 질문지 작성과 면접, 오차의 정밀한 측정 등으로 이뤄지는 현대적 여론조사 기법을 확립했다.장모인 올라 바브콕 밀러가 출마해 당선된 1932년 아이오와 주지사 선거에서 자신의 여론조사 기법의 효율성을 확인한 갤럽은 세 해 뒤 미국여론연구소(AIPO)를 창설해 그 소장이 되었다. 갤럽여론조사연구소(Gallup Poll)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AIPO가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은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그 때까지 여론조사를 선도해온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는 이 선거에서 공화당의 랜든 후보가 이기리라고 예측했으나, 갤럽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압도적 승리를 예측했다.
결과는 갤럽의 승리였다. 그것은 감(感)에 대한 과학의 승리라고도 할 만했다. 주로 중산층으로 이뤄진 잡지 구독자들로부터 표본을 뽑아낸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여론조사와는 달리, 갤럽은 성(性), 수입, 정치적 견해, 지역색 등을 범주화해 미국 인구의 단면도를 작성한 뒤, 이를 기초로 객관적 표본을 뽑았기 때문이다. 갤럽이 1947년 5월에 창립한 갤럽 인터내셔널은 세계 80개국에 걸친 조사망을 보유하고 있고, 1979년에 가입한 한국갤럽을 포함해 54개 여론조사 회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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